오늘날까지 우리가 뚝배기처럼 담백하고 구수한 음식문화를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은 이러니 저러니 해도 역시 전통적 장맛의 덕이다.

장맛이 "한국의 맛"의 모태라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장 가운데서도 원조격인 된장의 역사는 기원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고대 중국의 장은 새고기 짐승고기 물고기를 발효시킨 육장이었다니 우리
된장과는 다르고 고대 일본의 "미소"라는 장은 "고려장"을 지칭한 것이었다
고 한다.

우리가 전해준 장이라는 증거다.

고구려 안악고분의 벽화에는 된장 등의 발효식품을 저장했던 것으로 추정
되는 장독들이 보인다.

또 덕흥리 고분에는 술 고기 된장이 창고에 가득하다고 적혀 있다.

"신당서"에는 발해의 특산물로 된장을 꼽고 있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신라 고관 딸의 혼수품중에는 된장이 들어 있다.

장은 그만큼 중요한 것이기도 했다.

조선 선조때 왕이 북쪽 변방으로 피난하면서 제일 먼저 파견한 관리가
장담그는 것을 관장하는 합장사였다.

얼마나 장이 중요했으면 관청의 핵심적 직책을 맡은 관리를 "사또상의 장
종지"라고 빈정댔을까.

장을 담그려면 택일을 하고 고사를 지냈다.

그것도 모자라 장독에 금줄을 치고 장위에 숯이나 고추를 띄우기도 했다.

한편 된장은 약으로도 쓰였다.

"동의보감"에는 된장이 두통이나 열을 다스리는 약으로 적혀있다.

신라인들이 호랑이에 물리면 발랐던 된장은 얼마전까지만 해도 민간요법에서
상처에 바르는 비상구급약으로 쓰였다.

6일 열린 한국식품과학회 심포지엄에서 서울대 (주)농심 등 공동연구팀이
된장에서 암 고혈압 혈전증에 효능을 지닌 콩펩타이드 분말추출에 성공했다고
보고해 화제가 되고 있다.

대량생산도 가능해졌다는 이야기다.

주거환경의 변화로 이미 대부분의 장독대가 장 제조공장으로 옮겨진지
오래지만 여전히 우리 밥상에 오르고 있는 된장이 난치병을 다스리는 약이
된다니 우선 반가운 생각이 앞선다.

장은 역시 모든 것의 으뜸인 모양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1월 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