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의 쌀로 일컬어지는 반도체.

이 반도체를 만드는데는 고순도 실리콘이나 갈륨 비소 등이 재료로 쓰여져
왔다.

전기전도체와 절연체의 중간 성질을 갖는 물질이어야 반도체 칩의 기능을
수행할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같은 일반적인 관념을 뒤엎는 새로운 칩이 등장, 세계 반도체업계
의 주목을 끌고 있다.

네덜란드 필립스전자(Philips Electronics N.V.)가 개발한 플라스틱 칩이
그것이다.

이 회사는 최근 플라스틱을 사용한 반도체 직접회로(IC)를 세계 처음으로
만들어내는데 성공했다.

실리콘이 아니더라도 반도체 칩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한 것이다.

이번 플라스틱 칩 개발은 아인트호벤에 있는 필립스연구개발센터가 맡았다.

이번에 개발된 칩은 플라스틱 성질을 가진 폴리이미드(polyimide) 웨이퍼
위에 3백26개의 트랜지스터와 3백개의 수직 접점(vertical contacts)을 얹는
구조로 이뤄져 있다.

트랜지스터는 특수한 고분자(폴리머)의 일종인 유기금속(organic metal)에
자외선을 쪼임으로써 만들어진다.

지금의 실리콘 칩이 실리콘에 불순물을 집어넣어 반도체 성질을 띄게 하는
것과 비슷한 원리이다.

이 트랜지스터의 전기 전도도는 기존 실리콘 칩보다 뛰어나다.

수직 접점은 미세한 프린터침(printer needle)으로 만들어진다.

반도체로 사용된 물질은 공액 고분자(conjugated polymer)로 알려진 폴리
디에닐비닐렌(polythienylvinylen)이다.

또 절연성분으로 폴리비닐페놀(polyvinylphenol)이, 전극으로는 유기금속
폴리아닐린(polyaniline)이 사용됐다.

이들 물질 모두는 필립스연구소가 3년여간의 연구끝에 추출해낸 것으로
플라스틱을 구성하는 주요 성분들이다.

필립스연구소는 플라스틱으로 반도체 칩을 만들어 대량 생산할 경우 기존
실리콘 제조방법에 비해 공정을 획기적으로 단순화시킬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따라 칩 1개당 가격도 지금보다 훨씬 싸질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에 필립스가 시험 제작한 플라스틱 칩의 정보처리능력은 초당
30비트정도로 실리콘 칩의 1백만분의 1에 불과하다.

따라서 지금의 컴퓨터 CPU나 휴대폰의 DSP칩 등에 사용하기 위해서는 정보
처리속도를 높이기 위한 더욱더 많은 기술적 개선이 요구되는 것으로 지적
된다.

이와관련 삼성전자 기흥반도체연구소 김기남 이사는 "칩의 새로운 개념을
가져온 것으로 평가되고 있으나 앞으로 개발이 더 진행된다 해도 처리속도
등에서는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따라서 "플라스틱 칩이 처리속도가 낮아도 되는 분야에서는 대체 칩
으로 쓰일 수 있겠지만 첨단산업 분야에까지 적용될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필립스는 이번에 개발한 플라스틱 칩이 아직은 야심찬 연구개발계획
의 시작에 불과하다고 밝히고 있다.

이 회사는 늦어도 2~3년안에는 산업 및 상용 시스템 분야에 실제 사용할 수
있는 플라스틱 칩을 개발, 대량생산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필립스전자는 이를위해 최근 독일의 "오메콘 케미 GmbH"와 협력체제를
구축했다.

오메콘 케미 GmbH는 세계에서는 유일하게 유기금속을 상업적으로 제조,
판매하는 회사이다.

이 회사는 고분자 칩의 핵심기술인 유기금속의 제조공정에 관한 특허를
갖고 있다.

< 정종태 기자 jtchung@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1월 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