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에 본사를 둔 다국적기업 한국법인 사장과 저녁을 하게 됐다.

세상 돌아가는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한국의 경쟁력에 화제가 이르렀다.

그러자 그는 대뜸 "괴짜가 존중되지 않는게 한국의 가장 큰 결점"이라는
다소 엉뚱한 견해를 내놓았다.

괴짜가 인정되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가 창조성을 가로막으며 한국의 국가
경쟁력을 끌어내리고 있다는 주장이었다.

미국사회에선 엉뚱한 발상과 행동들이 사회적으로 피해가 없는 테두리내
용인되는데 비해 한국에선 톡톡튀는 사람은 따돌림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괴짜가 인정을 받지 못하는한 한국이 IMF 관리체제를 벗어나도 일류국가가
되기는 힘들 것이라는게 그의 결론이었다.

그의 주장은 일리가 있다.

우리 사회는 그동안 압축성장 과정에서 사회적 시스템이 너무 딱딱하게
굳어졌다.

권위주의적 사고와 체제는 사회 곳곳에 깊게 뿌리를 내렸다.

일사불란한 시스템은 소품종 대량생산이 경쟁력 기반이었던 산업화 시대엔
힘을 발휘했다.

전근대적 한국사회를 세계 12대 경제대국으로 부상하는 원동력 역할을 했던
셈이다.

그러나 다품종 소량생산의 정보화 시대에 들어선 지금 획일적 시스템은
오히려 발전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벗어던져야 할 "껍질"인 것이다.

위기상황 극복의 모델로 흔히 "미국을 배우자!"(Look America!)고들 한다.

미국식 모델의 특징으로 주주우선 경영, 경영의 투명성 등을 든다.

그러나 우리가 보다 근본적으로 배워야할 것은 "유연성과 창조성"이다.

자유롭게 사고하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낼수 있게 만드는 시스템이다.

유연하고 창조적인 시스템은 미국식 모델의 핵심으로 수많은 "창조적
괴짜들"을 탄생시킨다.

아이디어와 전문지식으로 무장한 괴짜들은 한 우물만을 파 각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다.

이들은 미국사회를 떠받치는 힘이 되고 있다.

대학을 중퇴하고 컴퓨터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마이크로소프트 왕국을
건설한 빌게이츠회장, 스탠포드 대학생시절 인터넷 검색엔진인 "야후"를
만들어 백만장자가 된 제리 양, 세계최대의 사이버 서점인 "아마존"을
개설해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제프리 베조스 아마존사 사장 등은
바로 창조적 괴짜들이다.

인터넷 검색프로그램 넷스케이프를 개발한 넷스케이프사의 마크 앤드리센
부사장도 괴짜 부류에 속한다.

한국식 기준으로 보면 말썽꾸러기에 불과했을 이들은 미국경제가 사상
유례없이 긴 호황을 구가하게 한 주역들이다.

미국식 시스템은 이들을 말썽꾸러기에서 한 사회의 리더로 키워 냈다.

창조성의 중요성은 유태인의 사례에서도 찾아볼수 있다.

세계인구의 1%에 훨씬 못미치는 유태인이 전세계를 주름잡고 있는 원동력은
"자기창조"에 투철하기 때문이다.

유태인의 성전인 "탈무드"의 마지막 페이지는 기원전 5세기 탈무드가 처음
책으로 엮여진 이후 항상 하얗게 여백으로 남겨져 있다.

후손들이 이 여백에 창조적 지혜들을 보태라는 교훈이다.

한국은 세계에 특별히 내세울만한 상품이 없다고들 한다.

전자 자동차 정보통신 철강 조선 등 어느분야를 둘러봐도 완벽한 세계 1등은
없다.

소프트웨어 컴퓨터 통신 생명공학 영상산업 게임 등 미래 유망산업으로
간주되고 있는 분야에서는 말할것도 없다.

창조적 전문가들이 부족한 까닭이다.

IMF 관리체제에 들어선지 어언 1년.

사상 유례없는 실업 문제를 어떻게 풀 것인가가 초미의 과제로 되고 있다.

실업 문제도 창조적 괴짜를 키우고 이들이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상품화해
사회적으로 성공할수 있도록 여건과 시장을 만드는데서 해결점을 찾아야
한다.

한국경제신문이 벌이고 있는 "1백만 일자리 만들기 운동"(One Million
Jobs;OMJ)의 핵심은 바로 창조적 일자리를 만드는데 있다.

요즘 본지에 연재중인 "파워 프로" 시리즈 기사에 대한 독자들의 높은
관심도는 우리 사회의 큰 흐름이 이미 과거 규격화된 "하드"(Hard)에서
창의성을 중시하는 "소프트"(Soft)쪽으로 바뀌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정부는 다가올 21세기를 대비, 새로운 틀(패러다임)을 만들기 위한 개혁
작업을 벌이고 있다.

획일적이던 교육시스템도 창조성과 다양성을 중시하는 쪽으로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새로운 패러다임의 핵심은 괴짜를 존중하는 것, 한걸음 더 나아가서
창조적 괴짜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직장과 사회도 마찬가지다.

튀는 사람, 평범하지 않은 사람들을 키울수 있는 분위기가 돼야 한다.

괴짜들이 대접받고 클수 있는 토양을 만들자.

최필규 < 산업1부장 phil@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1월 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