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웅 < 현대경제연구원장. jwkim@hri.co.kr >

최근 전혀 다른 성격이면서 공통점을 지니고 있는 두가지 사건이 우리의
관심을 끌고 있다.

바로 금강산 관광의 시작과 김대중 대통령의 중국 방문이다.

전자는 제한적인 개방 확대에 대한 북측 의지의 표현이라는 점에서, 후자는
향후 북한의 개혁.개방 확대와 관련하여 중국의 역할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양자 모두 북한의 개방이라는 공통 분모를 지니고 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작금의 북한은 극심한 경제난에 직면해 있다.

그 궁핍한 정도는 이미 외부의 지원없이 해결되기 어려운 상황에 도달해
있다.

최근 김정일이 남한 기업의 대북 경협에 대해서 허용 의지를 분명히 한 것은
당면 경제난 해결을 위한 차선의 선택으로 귀결될 수 있다.

사실 그동안 북한은 자력갱생에 의한 정권 유지와 개방에 의한 정권 유지라
는 동일한 목표를 위한 서로 상반된 방법론사이에서 고민해왔다.

이러한 고민의 흔적은 인민이 풀죽을 먹는 한이 있더라도 사회주의를 고수
하겠다고 강변하면서 개방에 뜻이 없는 듯한 태도를 취했는가 하면, 다른
한편으로 중국의 개방모델을 관찰하고 나진.선봉자유경제무역지대를 설치했던
이중적인 자세에서 잘 드러난다.

돌이켜 보면 과거 문화대혁명이라는 현대사의 암흑기를 거친 중국에 남은
것은 경제적 파탄뿐이었다.

계속되는 대기근과 아사자 속출 현상은 지금의 북한과 다를 바 없었다.

최악의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중국은 "중국식사회주의", 나아가 "사회주의
초급단계론"이라는 이론을 제시하면서 자본주의 체제와 사회주의체제를
접목시킨 "사회주의 시장경제체제"를 도입했다.

이로써 중국은 성공적인 개혁.개방을 수행하고, 정치와 경제를 동시에
안정시킬 수 있음을 증명했다.

중국이 표방하고 있는 이같은 체제는 반드시 대내 개혁과 대외 개방 정책이
수반되었다.

중국의 경험은 개방을 거부하려는 북한에 대한 심리적인 압박 요인이자
장차 그들이 취해야 할 하나의 모델이 되고 있다.

그동안 중국식 모델이 북한에 영향을 주었다는 사실은 최근 김정일이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과의 면담시 중국의 경제 특구중 하나인 선전을 거론한데서
도 단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 대목에서 주목할 점은 최근 제한적인 개방 확대에 대한 김정일의 공식적
인 의지 표명은 북한의 경제난이라는 내부 요인과 중국의 경험이라는 외부
요인에 의한 불가피성에 기인한다는 사실이다.

즉 바닥까지 간 국민 경제가 개방을 하도록 북한 지도층의 등을 떠밀은
형국이고, 사회주의 혈맹이자 북한의 최대 후원자인 중국의 영향이 부지불식
간에 작용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가난이 사회주의인 것은 아니다라는 중국식 사고가 이제 북한에 먹혀들기
시작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번에 김대중 대통령이 4강 외교의 일환으로 중국을 방문한다.

이번 중국 방문은 미국 일본에 이은 세번째로 4강 외교를 바탕으로 한 남북
문제 접근과 IMF 경제난 극복이라는 김 대통령 구상의 실천이다.

이 가운데 남북 문제만 본다면, 그동안 중국은 개혁.개방의 성공적인 수행을
통한 정권 안정이라는 새로운 모델을 제시함으로써 나름대로 북한의 개방
유도에 영향을 미쳐왔다.

더구나 북한의 최고 실권자가 제한적인 개방 확대라는 의지를 표명한 이때,
중국의 역할은 과거 어느 시기보다 가치를 발휘할 수 있다.

따라서 이번 김 대통령의 중국 방문을 통해 우리 정부는 북한의 개방 확대를
위해 중국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한반도 안정과 중국이 바라는 진정한 화평과 직결되어 있으며
나아가 중국의 국익에 도움이 됨을 거듭 설득시켜야 한다.

우리 또한 이렇게 하는 것이 곧 대북 포용 정책의 연장이며, 북한의 자발적
개방을 유도할 수 있는 하나의 방안임을 인식해야 한다.

다시 말해 우리는 대북 포용 정책이라는 내적 요인과 중국의 역할이라는
외적 여건이 화학적인 결합을 통해 민족 화해라는 대명제가 실현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는 바로 북한의 개방 정책이 피동성에서 자발성
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하는 일이다.

왜냐하면 이같은 자발성은 향후 북한 정권의 불규칙성과 불확실성을 대폭
감소시키는 역할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1월 1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