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마교로 알려져 있는 티베트 불교는 7세기 전반에 전해진 인도 중국의
불교와 토착종교인 본(Bon)교가 융합된 종교다.

8세기 후반부터는 인도에서 들어온 밀교가 큰 영향을 주어 지금도 밀교의
성격이 짙다.

13세기 중엽부터 원나라와 관계를 갖게되면서 티베트의 정치.종교 양권을
모두 장악했다.

원나라의 강적인 라마교 숭배는 티베트 불교를 완전히 타락시켰다.

라마교는 분열됐고 종파간의 타툼이 치열했다.

승려들은 모두 결혼했다.

사원의 주지직은 아들에게 물려주는 세습제로 운영됐다.

14세기 후반 타락한 라마교 개혁에 앞장선 인물은 총카파란 승려였다.

그는 "황색교단"을 조직해 음주를 줄이고 기도를 늘리는 등 엄격한 수도
생활을 하도록 했다.

다시 독신생활을 시켰고 사원 세습제를 없앴다.

이 교단의 승려들은 노란색 모자를 착용해 "황모파"라 불렸고 그 우두머리를
"달라이 라마"라 했다.

"달라이"란 "바다"를 뜻하고 "라마"란 훌륭한 사람을 뜻한다.

총카파는 티베트 불교를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만든 특수한 교리를 창출해
낸다.

달라이 라마가 그 계승자에게 환생돼 나타난다는 것이다.

총카파는 게둔두프에게 종단의 지도권을 넘겨주었고 그가 제1대 달라이
라마로 추존된 이후 현재 인도에 망명해 있는 14대까지 "환생"교리로 이어져
오고 있다.

지금도 달라이 라마는 티베트의 정신적 지주다.

"판첸라마"라고 불리는 후계자는 이전 달라이 라마가 죽은뒤 49일만에
태어나고 사자의 유품이나 사찰구조를 알아보는 등 비범한 증표가 있어야
한다.

엄격한 신탁의식도 치러야 한다.

망명중인 달라이 라마가 95년 인정한 현재의 "판첸라마"는 9살의 초에키
니마다.

환생교리는 교단조직의 지속성과 영구성을 보존하기 위한 티베트 불교의
지혜가 숨어있는 제도다.

조계종의 실권지도자인 총무원장을 뽑을 때마다 종단은 아수라장이 되고
폭력이 난무한다.

민주주의도 좋지만 조계종은 속세와는 좀 색다른 종교적 지도자 선출방법을
고안해내야 하지 않을까.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1월 1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