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유럽연합(EU)간의 무역분쟁이 심상치않다. 미국이 EU의 바나나 수입
정책이 불공정하다는 이유로 EU의 14개품목에 대해 보복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하자 EU도 맞대응하겠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자칫 무역전쟁으로 비화
될 조짐마저 보이고 있어 걱정스럽다.

가뜩이나 어려운 세계경제를 더욱 곤경에 빠뜨릴 위험이 있는데다 세계각국
의 보호무역 망령을 되살리는 촉매역할을 하지않을까하는 점에서 그렇게 생각
한다. 또한 그같은 불똥이 우리 발등에 떨어질 우려도 없지않기 때문에 더욱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미국정부는 EU뿐아니라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와 중남미 국가들에까지
다양한 무역제재조치를 내리고 있다. 우리에 대해서도 지난 10일 철강제품에
대한 덤핑예비판정을 내린바 있고 섬유 등 여러 품목에 대해 반덤핑 또는 보
조금지급 등에 대한 조사가 진행중인 것으로 파악된다.

최근들어 강화되고 있는 미국의 일방적인 무역제재조치가 당장은 자국의
무역적자축소에 다소 도움이 될지 몰라도 길게 보면 세계무역을 위축시켜
미국경제에도 오히려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점에서 우리는 미국이 최대한
자제해줄 것을 촉구한다. 특히 세계경제의 위기극복을 위해 지금 미국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를 감안한다면 무역장벽을 쌓는데 앞장서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더욱 명백해질 것이다.

올들어 세계각국의 수입규제조치는 과거에 비해 급격히 늘고 있는 추세다.
통상교섭본부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29건에 불과했던 우리나라에 대한 외국의
반덤핑 규제가 올들어서는 40건으로 늘어났고 반덤핑 규제여부를 조사중에
있는 것만도 29건에 이른다. 지난해까지 거의 없었던 보조금에 대한 상계관세
부과나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들도 각각 4건씩에 달해 수입규제 수단
이 다양화되고 있는 것은 그만큼 각국의 수입규제가 적극적으로 검토되고
있음을 반증한다.

문제는 세계경기 침체가 지속되면서 이같은 추세는 더욱 짙어질 것이라는
점이다. 오는 17~18일로 예정돼있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정상회의
에서 미국은 각국에 대해 시장개방을 강력히 요구할 것이란 소식도 들린다.
이는 잘 안되면 제재조치를 강화하겠다는 뜻이다.

무역의존도가 높은 우리로서는 매우 염려스러운 여건 변화다. 만약 각국이
경쟁적으로 수입규제조치를 늘린다면 우리는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수출확대를 통한 외환위기 극복이 초미의 관심사인 우리로서는 피해를
최소화시키기 위한 철저한 대비책이 절실하다. 정부차원의 정보수집과 통상
교섭 능력을 제고하는 것은 물론 업계 스스로 질서있는 수출을 통해 교역상대
국의 수입규제를 사전에 예방하는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미국의 EU에
대한 무역제재조치가 결코 남의 일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1월 1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