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잠잠했던 "아시아적 가치"에 대한 논란이 재연될 가능성이 있다.

APEC 정상회의에 아시아적 가치를 완전히 다른 시각으로 해석하는
지도자들이 참석하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김대중 대통령과 마하티르 말레이시아 총리가 눈에 띈다.

세계각국의 지도자들이 모인 정상회의 자리여서 일부러 논란을 일으키지는
않겠지만 비공식 석상에서 한두마디라도 나오면 상당한 흥미를 끌수도 있다.

"아시아적 가치"에 대한 정의와 평가만큼 논란을 빚는 소재도 드물다.

아시아적 가치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학자들은 정실주의와 이중규범,
부정부패, 권위주의 등이 아시아의 경쟁력을 떨어뜨려 외환위기를
불러왔다고 지적한다.

그 반론자들은 아시아 위기의 원인을 경제적인 이유에서 찾는다.

외환상황이 좋지않은 시점에 국제투기꾼들이 들이닥쳐 주가와 환율을 들먹여
놓은 것이 직접적인 요인이라는 주장이다.

아시아적 가치는 오히려 그동안 기적을 일으킨 성장의 원동력이었다고
강조한다.

그런가하면 아시아적 가치란 아예 존재하지도 않고 그런 관습은 세계
어디에도 있다는 이들이 많다.

아시아적 가치중에 부정적인 면도 있지만 순기능은 오히려 본받아야 한다고
중도론을 펴는 학자도 있다.

아시아적 가치에 대한 옹호론자의 견해를 정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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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는 아시아적 가치 옹호론자의 대부격이다.

지난 94년 미국 학술지 포린 어페어스를 통해 당시 김대중 아.태재단
이사장과 아시아적 가치를 둘러싸고 한판 설전을 벌인 것으로 유명하다.

김 대통령과의 지상 논쟁은 아시아적 가치가 세계적인 관심사로 떠오르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리 전 총리는 포린 어페어스지와의 인터뷰에서 "문화는 천명"이라며
"서양식 민주주의와 인권은 문화가 다른 동아시아에는 적용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지난 65년 독립때부터 90년까지 총리를 역임하면서 싱가포르의 경제발전을
이끈 리 전 총리는 또 "각각의 나라들은 나름의 통치형태를 찾아내야 한다"며
"개도국에서는 경제성장이 최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즉 두터운 중산층이 없이는 민주주의도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리 전 총리는 아시아외환위기를 계기로 여론의 도마위에 오른 아시아적
가치의 유효성에 대한 발언의 강도를 더욱 높이고 있다.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과의 인터뷰에서 리 전 총리는 "미국식 시스템이
현재로서는 가장 성공적인 것으로 보이지만 개인의 오류에 대해 철저히
책임을 묻고 부자와 빈자, 성공한 사람과 실패한 사람을 엄격히 구분짓는다는
점에서 장기적으로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아시아에는 상호간의 의무에 기초해 사회적 공동 삶의 질서를
부여하는 5가지 원칙이 존재한다"며 "유교적 가치관은 좋은 가족관계를
만들고 결국 국가적 차원의 유대로 확대돼 국가발전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한다"고 강조했다.

리 전 총리는 "외환위기에도 불구하고 아시아 기적은 끝나지 않았다"며
"다만 급성장을 이끌어냈던 여러 요인들이 이제 새로운 단계에서 재조정이
필요할 뿐"이라고 말했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1월 1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