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잠잠했던 "아시아적 가치"에 대한 논란이 재연될 가능성이 있다.

APEC 정상회의에 아시아적 가치를 완전히 다른 시각으로 해석하는
지도자들이 참석하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김대중 대통령과 마하티르 말레이시아 총리가 눈에 띈다.

세계각국의 지도자들이 모인 정상회의 자리여서 일부러 논란을 일으키지는
않겠지만 비공식 석상에서 한두마디라도 나오면 상당한 흥미를 끌수도 있다.

"아시아적 가치"에 대한 정의와 평가만큼 논란을 빚는 소재도 드물다.

아시아적 가치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학자들은 정실주의와 이중규범,
부정부패, 권위주의 등이 아시아의 경쟁력을 떨어뜨려 외환위기를
불러왔다고 지적한다.

그 반론자들은 아시아 위기의 원인을 경제적인 이유에서 찾는다.

외환상황이 좋지않은 시점에 국제투기꾼들이 들이닥쳐 주가와 환율을 들먹여
놓은 것이 직접적인 요인이라는 주장이다.

아시아적 가치는 오히려 그동안 기적을 일으킨 성장의 원동력이었다고
강조한다.

그런가하면 아시아적 가치란 아예 존재하지도 않고 그런 관습은 세계
어디에도 있다는 이들이 많다.

아시아적 가치중에 부정적인 면도 있지만 순기능은 오히려 본받아야 한다고
중도론을 펴는 학자도 있다.

아시아적 가치에 대한 옹호론자의 견해를 정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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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시스 후쿠야마 미국 조지 메이슨대 교수는 원래 서구식 자본주의의
열렬한 예찬론자였다.

"역사의 종말"이라는 저서에서도 후쿠야마 교수는 "인류의 미래는 결국
서구식 개인주의적 자본주의로 귀착될 것"으로 전망했었다.

일본인 3세인 후쿠야마 교수는 그러나 최근 이같은 전망이 잘못됐음을
인정했다.

뉴욕 타임스지와의 회견에서 과연 자신의 판단이 옳았는지 회의가 든다고
실토했다.

규제받지 않는 시장이 지속적인 경제성장과 정치적 자유를 가져다 줄
것이라는 신자유주의의 "시장만능신화"가 세계금융위기로 산산조각나면서
부터였다.

후쿠야마 교수는 아예 아시아적 가치 옹호론자로 돌아섰다.

조지 메이슨 대학에서 열린 한 세미나에서 후쿠야마 교수는 "아시아 위기에
비춰본 아시아적 가치의 미래"라는 기조연설에서 "아시아적 가치가 결코
아시아 금융위기의 원인이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아시아 금융위기의 원인은 각국 정부가 추진해온 경제정책의 실패에서
비롯된 것일 뿐 아시아적 가치 등 문화적인 이유와는 전혀 상관없다는 게
주장의 요지다.

후쿠야마 교수는 또 아시아만의 독특한 경제모델론도 부정했다.

이는 일부 아시아국가들이 독재정치를 정당화하기위해 만들어낸 것이므로
아시아적 가치와 혼돈해서는 안된다는 주장이다.

후쿠야마 교수는 한국과 일본을 예로 들며 "두나라는 급속한 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 가족제도가 잘 유지되고 있으며 범죄율의 급속한 증가도 없었다"고
강조했다.

이는 가족주의적인 유교문화의 영향 때문이라며 아시아적 가치의 필요성을
옹호하고 나섰다.

후쿠야마 교수는 따라서 "아시아위기를 계기로 아시아의 가치관을 폐기
하거나 서구화에 치중해야 할 필요는 없다"며 "아시아의 독특한 문화적
가치도 세계의 문화적 다양성속에 수렴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1월 1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