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별곡] (1) '첫 뱃길 승선을 기다리며' .. 이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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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 가는 길이 반세기만에 열렸다.
18일 금강호에 몸을 싣는 관광객들은 뜬 눈으로 간밤을 지샜다.
금강산을 밟는 소설가 이문구씨가 벅찬 감회의 글을 보내왔다.
금강산 절경을 생생하게 그린 이문구씨의 글은 23일부터 싣는다.
=======================================================================
살다보니 이런 일도 다 있구나.
이는 오히려 단순한 감동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한번 물어보고 싶다.
늘 남부러운 일이 태반이라 남부럽지 않은 일은 으레 남의 일로만 여기다가
바로 내일 아침이면 금강산에 닿는다는 "금강호"로 해로에 오르게 되었으니,
대관절 어느 위력이 조화를 부렸기에 이토록이나 큰 은고를 입는 것인가.
벌써 금강산 근처에도 가보기 전에 여민 가슴이 열리고 묵은 마음이 씻기는
듯하다.
그렇기로서니 일찍이 식구들과 떨어지거나 터전을 남긴채 내려와 반백년
쌓인 회포를 안고 가는 실향민들의 감회에야 감히 견줄 수 있을까.
그러나 사람이란 누구나 제나름이요 그 나름도 제각각이다.
나야말로 다 그만두고 오직 수학여행길에 오르는 동심으로 돌아가 그저
뻐기고 으스대고 싶은 속마음 하나는 누를 길이 없다.
금강산은 예로부터 천하에 더없이 너른 땅을 자랑했던 중국사람까지도
"고려에 태어나 금강산이나 한번 봤으면" 할 만큼 만방에 그 이름을 드날린
산이다.
만인이 그 이름을 대대로 회자하되 그 역사가 천년토록 풍화하지 않고
빛나기에 지금껏 민족의 산으로 받들고 있는 터이다.
이 금강산을 달리 문화의 산이라고 이르는 사람도 있다.
무수한 시인이 이 산을 노래하며 자기의 이름에 빛을 더하고 허다한 묵객이
그림으로 옮겨 자기 이름에 소문을 더했다고 해서 하는 말이었다.
나는 외람되게도 문필을 업으로 삼는 사람이다.
비록 선인들의 행적에는 미치지 못할망정 한가지 붓끝이 무디다 하여
물러선다면 스스로 때를 놓친 한을 떠넘길 데가 없다.
관광은 어디를 가나 떠나기 전에 미리 공부를 하는 것이 상식이다.
하물며 이름만 들어도 만리 타국의 처녀지와 다름없는 금강산일 것인가.
그러나 하고 많은 글과 그림과 사진을 펼쳐도 머리에 남는 것이 적다.
이제부터 보이면 보이는 대로 느끼면 느끼는 대로 모두가 새로운 공부일
터이니 그대로 쓰고 그대로 그리면 되지 않겠는가.
이것은 한갓 우둔한 자의 변명이 아니라 출발을 앞두고 가슴이 뒤설레어
안절부절 못하는 자의 실제 상황인 것이다.
금강산은 저마다 볼 탓이요 느낄 탓이며, 그릴 탓이요 말할 탓이며 이름할
탓이라는 말도 있다.
일만이천봉은 나이를 먹어갈수록 높은 데는 더 높아지고 깊은 데는 더
깊어진 채 마음에 환상으로 담겨 있다.
이제부터 가서 실상 일만이천봉을 담는다면 내 마음의 금강산은 몇만몇천봉
으로 늘 것인가.
헛된 욕심은 삼가기로 한다.
금강산 그늘이 관동 팔십리라 했다.
바라건대 그 덕이 내게 미친 바 있어 되도록이면 좀 더 곱게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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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문구씨 약력 ]
<> 41년 충남 보령 출생
<> 경기대 교수 (현)
<> "현대문학" 등단
<> 소설집 "관촌수필" "우리동네" 등 다수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1월 18일자 ).
18일 금강호에 몸을 싣는 관광객들은 뜬 눈으로 간밤을 지샜다.
금강산을 밟는 소설가 이문구씨가 벅찬 감회의 글을 보내왔다.
금강산 절경을 생생하게 그린 이문구씨의 글은 23일부터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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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니 이런 일도 다 있구나.
이는 오히려 단순한 감동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한번 물어보고 싶다.
늘 남부러운 일이 태반이라 남부럽지 않은 일은 으레 남의 일로만 여기다가
바로 내일 아침이면 금강산에 닿는다는 "금강호"로 해로에 오르게 되었으니,
대관절 어느 위력이 조화를 부렸기에 이토록이나 큰 은고를 입는 것인가.
벌써 금강산 근처에도 가보기 전에 여민 가슴이 열리고 묵은 마음이 씻기는
듯하다.
그렇기로서니 일찍이 식구들과 떨어지거나 터전을 남긴채 내려와 반백년
쌓인 회포를 안고 가는 실향민들의 감회에야 감히 견줄 수 있을까.
그러나 사람이란 누구나 제나름이요 그 나름도 제각각이다.
나야말로 다 그만두고 오직 수학여행길에 오르는 동심으로 돌아가 그저
뻐기고 으스대고 싶은 속마음 하나는 누를 길이 없다.
금강산은 예로부터 천하에 더없이 너른 땅을 자랑했던 중국사람까지도
"고려에 태어나 금강산이나 한번 봤으면" 할 만큼 만방에 그 이름을 드날린
산이다.
만인이 그 이름을 대대로 회자하되 그 역사가 천년토록 풍화하지 않고
빛나기에 지금껏 민족의 산으로 받들고 있는 터이다.
이 금강산을 달리 문화의 산이라고 이르는 사람도 있다.
무수한 시인이 이 산을 노래하며 자기의 이름에 빛을 더하고 허다한 묵객이
그림으로 옮겨 자기 이름에 소문을 더했다고 해서 하는 말이었다.
나는 외람되게도 문필을 업으로 삼는 사람이다.
비록 선인들의 행적에는 미치지 못할망정 한가지 붓끝이 무디다 하여
물러선다면 스스로 때를 놓친 한을 떠넘길 데가 없다.
관광은 어디를 가나 떠나기 전에 미리 공부를 하는 것이 상식이다.
하물며 이름만 들어도 만리 타국의 처녀지와 다름없는 금강산일 것인가.
그러나 하고 많은 글과 그림과 사진을 펼쳐도 머리에 남는 것이 적다.
이제부터 보이면 보이는 대로 느끼면 느끼는 대로 모두가 새로운 공부일
터이니 그대로 쓰고 그대로 그리면 되지 않겠는가.
이것은 한갓 우둔한 자의 변명이 아니라 출발을 앞두고 가슴이 뒤설레어
안절부절 못하는 자의 실제 상황인 것이다.
금강산은 저마다 볼 탓이요 느낄 탓이며, 그릴 탓이요 말할 탓이며 이름할
탓이라는 말도 있다.
일만이천봉은 나이를 먹어갈수록 높은 데는 더 높아지고 깊은 데는 더
깊어진 채 마음에 환상으로 담겨 있다.
이제부터 가서 실상 일만이천봉을 담는다면 내 마음의 금강산은 몇만몇천봉
으로 늘 것인가.
헛된 욕심은 삼가기로 한다.
금강산 그늘이 관동 팔십리라 했다.
바라건대 그 덕이 내게 미친 바 있어 되도록이면 좀 더 곱게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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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문구씨 약력 ]
<> 41년 충남 보령 출생
<> 경기대 교수 (현)
<> "현대문학" 등단
<> 소설집 "관촌수필" "우리동네" 등 다수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1월 1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