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태경제협력체(APEC) 회의장이 정치공세의 장으로 돌변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세계경제 위기상황에서 회원국간 경제협력방안이 그 어느때보다 진지하게
논의돼야 할 자리에서 경제문제는 뒷전으로 밀려나고 오히려 특정국의 국내
정치문제가 핫이슈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느슨한 조직체인 APEC이 한계를 보였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무엇보다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의 회의 불참을 두고 말이 많다.

공식적인 불참 이유는 이라크사태다.

하지만 실제 이유는 다른데 있었다는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마하티르 말레이시아 총리를 견제하기 위해서였다는 것.

클린턴 대통령은 아시아금융위기를 계기로 미국 등 서구자본을 맹렬히
비난하고 정치.경제개혁을 미루고 있는 마하티르 총리와 APEC 회의장에서
만나는 것 자체가 모양이 좋지 않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클린턴 대통령을 대신해 참석한 앨 고어 부통령은 좀더 직접적으로 마하티르
총리를 겨냥했다.

고어 부통령은 16일 만찬석상에서 "미국은 "용감한" 말레이시아 국민들이
개혁을 요구하는 외침을 들었다"고 강조했다.

올브라이트 미국 국무장관은 콸라룸푸르에 도착하자마자 만사를 제치고
구속중인 안와르 이브라힘 전 부총리의 부인을 만나기도 했다.

여기에다 중요안건이 무역자유화 협상이 결렬된 것도 클린턴의 발길을
막았다.

정상회의에 앞서 열린 각료회의의 만찬장은 이번 APEC이 정치색 짙은
회의가 될 것을 예고하기도 했다.

만찬장에서는 수하르토 전 인도네시아 대통령과 안와르 부총리를 소재로
한 정치풍자극이 공연돼 참석자들을 당황하게 했었다.

< 김수찬 기자 ksch@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1월 1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