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속의 역학 이야기] 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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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철재 충남대 언어학과 교수/역학연구가
cjseong@hanbat.chungnam.ac.kr >
누구나 자손대대의 영화번영을 꿈꾼다.
현실적인 재물이 많거나 적거나간에 자신들의 가문이 힘을 가진 권문세가가
되길 바란다.
이러한 염원을 어떤 후천적인 노력을 통하면 이룰 수 있다고 믿게끔하는
것이 묘지풍수로 알려진 음택풍수 사상이다.
음택풍수가 본격적으로 활기를 치기 시작한 것은 조선 중기부터라고 할 수
있다.
관료 풍수사들이 직업이 격하됨에 따라 생업의 차원에서 묘터를 잡아주게
되고, 문중과 종산의 개념, 그리고 유교적인 효도의 개념과 결부되어
음택풍수가 기승을 부리게 된 것이다.
이장은 말 그대로 무덤자리를 옮기는 것이다.
꿈자리가 사납다거나 이유없이 몸이 아프고 일이 잘 안될 때, 주변의 무속인
들은 조상의 묘자리가 이상하니 살펴보라는 말을 한다.
이장을 위해 무덤을 열어보면 그다지 좋지않은 현상을 보는 경우가 많다.
현장을 목격한 이상 좀 더 좋은 자리로 옮겨야 하고 이 대목에서 풍수사의
힘을 빌지 않으면 안된다.
경험많고 이름있는 지관에 의해 좋은 땅이 골라지면 정통 택일학의 방법
으로 조상 묘지일을 하기에 적당한 날을 결정해야 한다.
여기까지가 공식적인 행로이다.
한가지, 조상 묘지일을 윤달에 하면 아무 탈이 없다는 세간의 믿음은 수정
되어야 한다.
택일의 결과는 윤달이 좋을 수도 나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요즈음의 문제는 제대로 된 땅이 남아 있지 않다는 데 있다.
명당이라고 이름 붙을 만한 곳은 이미 돌아가신 분들의 차지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땅을 선택한 풍수사 곧 지관의 선택이 옳은 것이었냐 하는 것도
문제이다.
조선 중기때의 역학자겸 예언자인 남사고의 예는 이를 잘 증명해준다.
그 자신 시대를 뛰어넘는 능력자였음에도 아버지의 묘를 아홉번이나 이장
했으며 그 마지막 번도 패착이었음이 나중에야 밝혀진다.
그러나 여전히 조상의 묘,그리고 사후의 자신의 묘를 잘 쓰고자 하는
개인적 발원은 그치지 않고 있다.
제한된 국토를 효율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정부에서는 납골당을 권하는
실정임에도.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1월 19일자 ).
cjseong@hanbat.chungnam.ac.kr >
누구나 자손대대의 영화번영을 꿈꾼다.
현실적인 재물이 많거나 적거나간에 자신들의 가문이 힘을 가진 권문세가가
되길 바란다.
이러한 염원을 어떤 후천적인 노력을 통하면 이룰 수 있다고 믿게끔하는
것이 묘지풍수로 알려진 음택풍수 사상이다.
음택풍수가 본격적으로 활기를 치기 시작한 것은 조선 중기부터라고 할 수
있다.
관료 풍수사들이 직업이 격하됨에 따라 생업의 차원에서 묘터를 잡아주게
되고, 문중과 종산의 개념, 그리고 유교적인 효도의 개념과 결부되어
음택풍수가 기승을 부리게 된 것이다.
이장은 말 그대로 무덤자리를 옮기는 것이다.
꿈자리가 사납다거나 이유없이 몸이 아프고 일이 잘 안될 때, 주변의 무속인
들은 조상의 묘자리가 이상하니 살펴보라는 말을 한다.
이장을 위해 무덤을 열어보면 그다지 좋지않은 현상을 보는 경우가 많다.
현장을 목격한 이상 좀 더 좋은 자리로 옮겨야 하고 이 대목에서 풍수사의
힘을 빌지 않으면 안된다.
경험많고 이름있는 지관에 의해 좋은 땅이 골라지면 정통 택일학의 방법
으로 조상 묘지일을 하기에 적당한 날을 결정해야 한다.
여기까지가 공식적인 행로이다.
한가지, 조상 묘지일을 윤달에 하면 아무 탈이 없다는 세간의 믿음은 수정
되어야 한다.
택일의 결과는 윤달이 좋을 수도 나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요즈음의 문제는 제대로 된 땅이 남아 있지 않다는 데 있다.
명당이라고 이름 붙을 만한 곳은 이미 돌아가신 분들의 차지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땅을 선택한 풍수사 곧 지관의 선택이 옳은 것이었냐 하는 것도
문제이다.
조선 중기때의 역학자겸 예언자인 남사고의 예는 이를 잘 증명해준다.
그 자신 시대를 뛰어넘는 능력자였음에도 아버지의 묘를 아홉번이나 이장
했으며 그 마지막 번도 패착이었음이 나중에야 밝혀진다.
그러나 여전히 조상의 묘,그리고 사후의 자신의 묘를 잘 쓰고자 하는
개인적 발원은 그치지 않고 있다.
제한된 국토를 효율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정부에서는 납골당을 권하는
실정임에도.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1월 1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