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는 18일 콸라룸푸르 외곽의 한
대농장에 있는 사이버뷰 별장의 송키트 룸에서 열렸다.

회의는 오전, 오후 두 차례 걸쳐 진행된 뒤 의장국인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
총리가 코트 야드에서 정상선언문을 발표하고 다른 정상들이 참석한 가운데
공동기자회견을 열어 대표 답변하는 것으로 폐막됐다.

김대중 대통령은 오전 회의에서 마하티르 총리의 요청에 따라 추안 릭 파이
태국총리와 함께 8분간에 걸쳐 기조연설을 했다.

마하티르 총리는 한국과 태국이 금융개혁에 가장 성공적이라는 역내 회원국
들의 공통된 인식에 따라 기조연설을 요청했다는 후문이다.

김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금융위기 극복을 위해 위기국가의 자구노력,
미국.일본.중국 등 경제대국의 책임 있는 역할, 투기성 단기자금에 대한
감시.감독 강화 등 자신의 구상을 소상히 설명했다.

특히 김 대통령은 미국, 일본, 중국 등이 각각 금리인하, 아시아지원자금
제공, 위안화 가치유지 등으로 아시아금융위기 안정에 기여해온 점을 높이
평가했다.

이날 각국 정상들은 크레티앵 캐나다총리부터 시작, 국명 알파벳순으로
회의장에 들어섰으며 김 대통령은 오부치 일본총리 다음인 여덟번째로
입장했다.

정상들은 이날 모두 말레이시아측이 제공한 전통의상 "바틱"을 입었다.

회의장에는 수행 각료 등이 참석하지 못하고 각국 정상과 통역 1명씩만
입장, 회의를 진행했다.

각국 차관보급 이상 고위관리들은 옆방에서 화면을 통해 정상들의 토론내용
을 지켜보며 회의내용을 기록했다.

정상들은 오전회의 후 닭고기요리 등 말레이시아 전통음식으로 오찬을 한
뒤 다시 오후 회의에 들어갔다.

<>.회의장인 사이버뷰 별장은 말레이시아가 미국의 실리콘밸리를 본떠
아시아 최대의 멀티미디어센터로 개발한다는 야심찬 계획에 따라 지은 본부
건물군 중 일부.

말레이시아는 정상회의 전까지 이 센터의 1차 공사를 완공, 경제발전 모습을
과시하려 했으나 최근 외환위기에 따른 경제난 여파로 공사가 잘 진행되지
않는 등 참석 정상들이 아시아 경제위기를 실감케 하기에 충분했다.

한 관계자는 회의장 건물의 이런 모습에 대해 "김 대통령이 기조연설에서
밝힌 아시아 경제회복을 위한 회원국들의 "공동대처" 이니셔티브의 극적
효과를 역설적으로 높여주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주최측은 21개 회원국 정상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점을 감안해 회의 3시간
전부터 1백20여명의 각국 취재기자들에 대한 보안검사를 완료하고, 모든
차량의 접근을 통제하는 등 회의장을 외부와 철저히 차단했다.

공중에선 헬기가 선회비행하는 등 입체적 보안 및 경호활동이 이뤄졌다.

이날 참석자들 중 앨 고어 미국부통령은 주최측이 제공하는 승용차 대신
자신의 링컨 콘티넨털 리무진을 탄 채 다른 정상들의 배가 넘는 경호차량을
대동하고 도착, 영접하던 마하티르 총리가 다소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APEC 정상들은 오전회의를 마친 후 오찬장에서 다양한 화제로 격의없이
의견을 교환하면서 우의를 다졌다.

김 대통령은 오찬전에 에스트라다 필리핀 대통령를 만나자 고 아키노
상원의원과 자신이 미국 망명중에 나눈 우정을 소재로 환담을 나눴다.

김 대통령은 80년대 초반 보스턴 체류시절 아키노의원이 필리핀으로 귀국
하기에 앞서 비서를 통해 자신이 애지중지하던 타이프라이터를 선물로 전달
했으며 이를 지금도 서울에 보관하고 있다고 회고했다.

이에 에스트라다 대통령은 "김 대통령은 민주화 운동 및 아키노 의원
내외와의 친분 등으로 필리핀에서 인기높다"며 "나도 김 대통령을 존경한다"
고 말했다.

또 오찬 도중에는 김 대통령은 좌우에 앉은 세디요 멕시코 대통령과 오부치
일본 총리와 함께 문화, 경제 등을 주제로 의견을 교환했다.

김 대통령은 세디요 대통령에게 마야, 잉카문명 등 멕시코 문화에서부터
토인비의 역사연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소재로 풍부한 식견을 과시했다.

또 멕시코도 경제난을 겪었던 만큼 서로 협력해 어려움을 헤쳐 나가자고
제안했다.

오부치 총리와는 주로 일본의 내수진작책과 금융개혁 등을 주제로 얘기를
나누면서 오부치 총리가 이번 정상회의에서 내수진작을 위한 추가 재정지출
의사를 표명한데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했다.

<>.김 대통령은 이날 오후 2시간여동안 속개된 APEC 정상회의에서 주제인
전자상거래와 무역투자자유화에 대한 당위성을 강조해 다른 정상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김 대통령은 성장업종인 전자상거래의 장점과 중요성을 강조한 앨 고어
미국부통령의 지적에 대해 "APEC이 선도적 역할로 전자상거래를 발전시켜
나가자"고 지지의사를 나타냈다.

회의에서는 오전에 논의됐던 단기투기성 자금의 이동규제에 대한 대책을
놓고 논의를 계속했으나 명확한 대책은 도출하지 못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김 대통령과 앨 고어 미국부통령, 마하티르 말레이시아총리
간에 "아시아적 가치"를 놓고 논쟁이 벌어지지 않을까 하는 추측이 있었으나
기우에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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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희호여사, 삼성전자복합단지 격려 방문 ]

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는 이날 콸라룸푸르 남쪽 80km 지점 세람반시에
위치한 삼성전자복합단지를 방문, 현지 주재원과 종업원들을 격려했다.

총 16만평 부지에 삼성전관의 브라운공장 등 3개 공장이 들어서 있는
삼성전자복합단지는 7천여명의 종업원이 근무하고 있으며 한국의 말레이시아
진출기업단지로는 최대 규모다.

이 여사는 김종기 삼성전자복합단지 부사장으로부터 연간 수출실적이
12억달러에 이르며 말레이시아 정부로부터 올해 최우수기업으로 선정됐다는
현황보고를 받은뒤 "여러분이 자랑스럽다"고 방문 소감을 피력했다.

이 여사는 약 5백여명의 종업원들과 구내식당에서 오찬을 들기전 즉석
연설을 통해 "말레이시아의 놀라운 경제발전과 역동적인 모습에 감명을
받았다"며 "이같은 성장의 뒤에는 여러분 같은 숨은 공로자가 있기 때문"
이라고 종업원들의 노고를 치하했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1월 1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