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심한 노동쟁의끝에 퇴사한 노조간부들에게 모회사측이 협력회사를
차려주고 납품을 받기로 해 노사관계의 새로운 모델로 떠오르고 있다.

현대정공에 시트를 납품하는 (주)한일(대표 오태환.60.경북 경주시현곡면)
은 장기파업을 벌인 뒤 극도로 감정이 악화된 상태에서 자진퇴사한 이 회사
전 노조위원장 김헌열(32)씨 등 12명에게 이달초 회사를 설립해주고
시트 관련 부품을 납품토록 했다.

모기업은 특히 기본 장비와 전력은 물론 원재료까지 제공, 빠른 시일내에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배려했다.

오태환 사장은 또 쟁의 과정에서 제기한 수억원대의 소송도 취하, 김씨 등
이 기업에만 전념토록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오 사장이 이같은 조치를 취하게 된 것은 일차적으로는 IMF 사태의 여파로
협력업체들이 줄줄이 쓰러지자 이 공백을 메우기 위한 것.

그러나 격렬한 노동쟁의로 마음고생이 적지 않았던터라 오 사장은 "노동운동
하는 사람들도 직접 사업을 해봐야 사장 마음을 알 수 있다"며 전임
노조위원장들에게 회사를 운영해보라고 한데 더 큰 뜻이 있다.

뜻하지 않게 기업을 맡게 된 김헌열씨는 자동차부품업체들이 밀집한
경주 용강단지에 경보산업을 설립, 현재 모기업에 "보은"하기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20평 남짓한 이 회사 작업장에는 노동운동으로 퇴사한 10여명의 직원들이
새로운 각오를 다지고 있는 모습이 역력하다.

사실 그에게 올해초는 악몽과 같은 세월이었다.

IMF 사태로 가뜩이나 일자리가 줄어들었는데 노동운동 전력까지 있고 보니
취직은 그야말로 하늘의 별따기.

그러던 중 회사의 제안을 받고서 같이 일했던 동료들에게 문의한 결과
다들 찬성해 회사설립은 일사천리로 이루어졌다.

김사장은 "아직 채 한달도 되지 않아 정확히는 모르지만 오사장의 마음을
다소나마 알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러나 노조위원장 출신답게 그의 진짜 꿈은 직원들과 같이 일하고
경영성과를 공개해 정당하게 분배하는 이상적 일터를 만드는 것.

김사장은 최근 사재를 털어 납품용 포터를 구입했다.

그는 "품질과 납기에서 모기업의 인정을 받는 것이 일터를 확보하는 최선의
길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며 밝게 웃었다.

< 경주=신경원 기자 shinkis@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1월 2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