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어머니가 자신의 딸을 엘리베이터안에서 괴롭힌 청년을 세계명작독후감
을 써내는 조건으로 용서했다는 신문기사는 우리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세계명작 10권의 제목까지 일러주고 수사관에게 제출했다고 한다.

그가 아무리 10대 청소년일지라도 성추행은 용설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그 어머니는 분노와 수치심과 고통을 억누르고 그런 결정을
했으리라.

성추행과 성폭행은 종이 한장 차이다.

순간적으로 폭행이 된다면 피해자는 평생 우울증에 시달리거나 자칫 삶을
포기하려는 생각을 가질 것이다.

틀림없이 어머니는 책을 많이 읽은 분이리라.

끝까지 그를 중범죄자로 다룰 수 있었지만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할 수
없었다.

증오의 대상은 바로 배우지 못하고 유혹에 약한 그 청소년의 무지에 있을
것이다.

아마도 헤르만 헤세의 싱클레어처럼 진정으로 자신에게 이르는 길을
가르치고 싶었으리라.

헤세의 소설"데미안"에서 싱클레어는 유혹에 약하고 고통을 받으면
헤어나지 못한다.

심각한 마음의 갈등을 겪다가 데미안을 만나 마음의 갈등을 치유하고
새사람이 된다.

그리하여 더 나은 삶을 향해 나아가고 새로운 삶을 찾아 자신있게 떠난다.

선과 악, 이 두 세계가 공존하는 세상에서 어떤 것이 선인가를 생각하도록
가르친다.

이 소설을 읽어서 다시는 죄짓지 말고 새사람이 되도록 간절히 빌었을
것이다.

한 순간의 유혹을 견디지 못하고 범죄를 저질렀다면 그는 분명 단 한권의
명착을 읽지 못했을 것이다.

책이 인생을 가르친다는 것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세계 명작은 "세월이 가도 영원히 변하지 않는 진리와 가치가 책 속에 있다"
고 가르친다.

이런 교훈을 그 어머니는 잘못을 저지른 청소년 뿐만 아니라 이 세상 사람
모두에게 깨우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자기를 개선하고 완성하는데 바쁜 존재이다.

자아의 충실한 발전없이 우리 사회는 발전할 수 없다.

범죄가 없는 사회.

우리는 언제 그런 유토피아를 꿈꿀까.

꿈이 도리지라도 한 사람 한 사람을 개선시킬 수 있다면 어떤 교육적 투자
를 해서 얻는 결과보다도 만족스러울 것이다.

책을 읽는 국민이 많을수록 그 사회는 바람직한 사회다.

그런 변화라도 보여야 하는 내적 성숙이 시급한 때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1월 2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