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통상정책이 강공으로 선회하고 있다.

세계 외환 위기의 여파로 한동안 거두어 들이는 듯했던 대외 통상 압력의
포문을 다시 터뜨리기 시작했다.

자동차시장을 놓고 한국의 얼을 빼놓더니 요즘에는 철강 수입 문제로 일본
브라질 러시아와 그리고 바나나 수출 건으로는 EU(유럽연합)와 일촉즉발의
통상 갈등을 일으키고 있다.

주적인 일본에 대해서는 이밖에도 임산물 수입 자유화 등을 요구하며
공세의 고삐를 바짝 조이고 있다.

미국이 19일부터 시작된 빌 클린턴 대통령의 일본 및 한국 방문에서 다룰
의제의 앞머리에 올려 놓은 것 역시 통상 현안이다.

철강 전자 등 주요 제품의 소나기식 대미국 수출을 자제해 달라는 요구에
목소리를 높일 태세다.

미국의 통상 기류가 이처럼 강성으로 치닫고 있는 것은 무역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는데 대한 위기 의식 때문으로 보인다.

지난 9월중엔 항공기 수출의 일시적 급증에 힘입어 무역적자가 다소
줄어들기는 했으나 올 9개월 동안의 적자폭은 작년 동기에 비해 무려 50%
가량 불어나 있는 상태다.

그동안은 증시 활황 등의 덕분에 무역 적자 누증이 여론의 관심권에서 약간
비껴나 있었지만, 최근들어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외환 위기에 시달리고 있는 아시아 중남미 등 각국의 대미국 저가 수출
공세로 "한계 상황"을 맞고 있다는 제조업계의 비명이 갈수록 커지고
있어서다.

실제로 올 하반기 들어 수입 규모가 작년 동기보다 75% 늘어난 것으로
집계된 철강 업계는 수입 규제를 요구하는 대백악관 로비를 강화하고 있다.

미국 의회가 최근 "향후 1년 동안 철강 수입을 한시적으로 중지(moratorium)
시킬 것"을 클린턴 대통령에게 권고하는 결의문을 채택한 것도 이런 로비의
결과다.

통상 공세의 불씨를 다시 지핀 미국은 아시아 중남미 등 개도국 진영은
물론 EU와도 일전을 불사할 태세다.

최근 EU에 대해 "불공정한 미국산 바나나 수입 규제 조치"를 철회하지 않을
경우 보복 조치를 발동하겠다며 위협하고 있는 것이 단적인 예다.

그러나 상대국들은 미국의 이런 통상 공세에 대해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공세의 잣대를 자국에만 맞춘 나머지 앞 뒤가 맞지 않는 억지 공세가 적지
않다는 비난이다.

러시아에 대한 철강 반덤핑 조치가 좋은 예다.

미국은 러시아산 철강 제품에 대해 같은 조치를 이미 취했던 EU를 향해
"외환 위기를 겪고 있는 나라에 가혹한 제재를 가하고 있다"며 규제 철폐를
요구했었다.

EU 집행위원회는 이에대해 "미국이 일방적으로 우리의 머리를 향해 총을
겨누고 있다"는 내용의 성명서까지 내며 반발하고 있다.

특히 한국 등 아시아 국가들에 대해 통상 공세를 강화하고 있는데 대해서는
미국내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비판적인 견해가 만만치 않다.

외환보유고 확충 등을 통한 환란탈출을 위해서는 적극적인 수출 드라이브에
나서야 한다는 처방을 내린 장본인이 미국인데 이제 와서 수입 규제 운운
하는 것은 자가당착의 전형이라는 비판이다.

< 뉴욕=이학영 특파원 hyrhee@earthlink.net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1월 2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