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카콜라, 모토로라 호출기, 인텔 펜티엄이 장착되고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95가 탑재된 IBM컴퓨터, 비자카드..

생활주변에서 늘 접하는 물건들이다.

이 제품을 기획하고 만드는 제조업체는 모두 미국기업.

그만큼 미국기업들은 한국인들 생활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소비자들의 일상생활뿐 아니다.

투자자로서 한국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은 더욱 막강하다.

IMF이후에는 더욱 그렇다.

올들어 10월까지 국내에 들어온 대형(3천만달러 이상) 외국인 투자는 총
37건.

이 가운데 40%에 해당하는 15건이 미국기업에 의한 것이었다.

액수로도 33%.

대형투자 총 35억6천7백만달러중 11억7천6백만달러가 미국기업들이 쏟아
부은 돈이었다.

현재 한국에 나와 있는 미국계 투자기업은 1천2백88개사(98년 6월기준)로
전체 주한 외국인투자기업 4천7백46개사중 27%를 차지하고 있다.

한국시장이 개방되면서 미국기업들이 한국에 얼마나 적극적인 투자를
벌이고 있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렇다고 미국기업의 영향력이 단지 금전적 측면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미국식 경영바람을 몰고와 기업문화를 바꿔 놓으면서 달러유입 이상의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IMF이후 한국에 불어닥치고 있는 글로벌 스탠더드 경영의 전파사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는 셈이다.

연봉제, 팀제, 수익성위주의 경영등 요즘 재계에 불고 있는 신경영바람은
대부분 미국에서 건너온 것이다.

국내 대학생들 사이에 입사희망 0순위로 꼽히는 IBM.

이 회사는 연봉제 관련세미나 때마다 단골 주제발표 손님으로 등장한다.

IBM은 국내에 연봉제를 도입한 선구자로 꼽힌다.

지난해 쌍용제지를 인수해 국내 생리대시장을 휩쓸어 버린 P&G는 브랜드
마케팅의 대가.

P&G의 트레이드 마크인 브랜드 매니저제(브랜드별로 독자적인 제품기획및
영업활동을 벌이는 제도)는 요즘 국내 기업들에까지 확산되고 있다.

월마트의 한국진출은 국내 유통업계에 지각변동을 일으킨 대사건이었다.

월마트는 지난 7월 1억8천1백만달러를 투자, 한국에 상륙했다.

현재 매장은 4곳.

그러나 월마트가 한국 유통업계에 미친 영향력은 투자액이나 매장수를 훨씬
뛰어넘는다.

월마트가 유통업계에 몰고온 가장 큰 변화가 가격결정권을 제조업체에서
유통업체로 옮겨 왔다는 점.

월마트는 대량구매를 통한 바잉파워(buying power)를 동원, 가격결정의
헤게모니를 장악했다.

"더 싸게 판다"는 단순하면서도 강력한 월마트의 무기는 국내 유통업계를
가격인하의 전쟁터로 바꿔 놓았다.

월마트 국내진출을 계기로 국내 유통업의 중심추가 백화점에서 할인점쪽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점도 빼놓을수 없는 월마트 파워다.

이제 미국기업들은 한국에 공장을 짓고, 한국인들의 일자리를 만들어 고용
을 창출하는 등 엄연한 경제주체로서 활약하고 있다.

기업의 국적은 중요성이 희미해지고 있다.

경제기여도가 훨씬 중요한 잣대가 되고 있다.

한 외국계 컨설팅업체 한국지사장의 질문은 이런 점에서 음미해볼 필요가
있다.

"부실경영으로 국가자원을 낭비하는 한국기업과 모범경영으로 고용을
창출하고 재투자를 통해 사업을 키워 가는 미국기업. 이 가운데 어느쪽이
한국인들에게 존경받아야 할 기업입니까"

< 노혜령 기자 hroh@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1월 2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