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르르릉"

"..A기업 2년짜리 1백개 10bp 팔자.

잠시만 기다리세요...

1백개 10bp에 체결 됐습니다"

한화증권 채권팀 임찬익과장(36)은 이런 전화를 하루평균 3백통 정도
주고 받는다.

그의 직업은 채권브로커.

채권을 파려는 사람과 사려는 사람을 중간에서 연결해 매매를 이끌어 낸다.

채권시장의 "중매쟁이"인 셈이다.

채권시장에서 1개는 1억원을 말하며 1bp(basis point)는 0.01%포인트다.

위의 전화내용은 A기업의 2년만기 회사채 1백억원어치를 기준수익률에
0.01%포인트 더한 금리에 매매가 이뤄졌다는 것이다.

임과장은 투자신탁회사 은행 보험 종금 증권 금고 등 금융기관을 대상으로
채권매매를 중개한다.

그는 이들에게 "금리 결정자"로 통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시중 실세금리의 기준으로 불리는 3년만기 회사채 유통수익률은
당일 거래된 회사채의 매매수익률을 기준으로 정해진다.

회사채 유통은 증권사를 통해 이뤄지는데 한화증권이 하루평균 15-20건의
매매로 업계 최고수준이다.

이중 절반이상은 임과장이 해낸다.

그의 매매 수익률이 시중금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그가 채권과 인연을 맺은 것은 지난 88년 한화증권에 입사하면서부터.

채권팀으로 바로 발령났다.

당시 채권브로커는 "찬밥신세"였다.

주가가 800-900선을 오르내릴때 였으니 주식브로커가 단연 최고였다.

더군다나 그때까지만 해도 금융기관들은 채권을 한번 사들이면 만기까지
보유하는게 보통이어서 지금처럼 채권거래가 활발치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처음 1년동안 그는 뒤치다꺼리만 했다.

금융기관을 돌아다니며 채권과 돈을 직접 맞바꾸는 수도업무였다.

1년을 이렇게 보낸뒤 브로커로 "데뷔"했지만 실수연발이었다.

가격대가 맞지 않아 애를 태운 것은 물론 겨우 파트너를 물색해 놓으며
다른 데서 가로채 가버려 허탕치기가 한두번이 아니었단다.

임과장은 이런 와중에 채권의 오묘한 매력에 점점 빠져들었다.

채권수익률의 매카니즘을 알게됐고 금리예측을 잘만 하면 채권매매로
엄청난 이익을 남길수 있다는 것 등등을.

완벽한 브로커가 되려면 단순 중개자로선 한계가 있다는 것도 깨달았다.

금리 채권 나아가 금융시장 전반에 대한 탐구에 들어갔다.

시간이 흘러 10년이 지난 지금 그는 국내 채권 유통시장을 리드하는 베테랑
채권브로커로 변신한 것이다.

끝없는 도전과 자기계발 결과였다.

채권은 워낙 종류가 많은데다 주식처럼 증권거래소의 전산시스템으로
매매되지 않고 대부분 증권사를 통한다.

그래서 매매 성사율이 별로 높지 않다.

임과장 역시 "실제로 사는 사람과 파는 사람조차 얼마에 사고, 팔아야 할지
감을 제대로 못잡을 때가 많다"고 말한다.

터무니 없는 값에 팔아달라고 주문하는 금융기관도 부지기수란다.

그래서 양쪽 다 "섭섭하지" 않게 가격을 조정하기란 여간 힘드는 일이
아니다.

그러나 임과장의 매매 성사율은 1백%에 가깝다.

매도.매수자를 신속하게 연결시켜 단시간에 거래를 성사시킨다.

가격조건이 서로 다를 경우엔 합리적인 수준으로 양자를 수긍시킨다.

브로커 경력 10년째인 그이기에 남다른 비결이 있을 법도 하다.

하지만 숨은 비결은 없다.

"한 건을 위해 수십번을 전화할때도 많습니다.

그래서 동시통화는 예삿일이고 심지어 수화기 3개를 한꺼번에 잡아야 할
때도 있지요"

쉽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매수자를 찾아내는 승부근성이 비결이라면
비결이다.

오후 4시쯤 매매업무가 대충 마무리되면 고객관리를 위해 기관방문을
나선다.

전화로 하지 못한 깊은 얘기를 나눈다.

"어떤 **투신이 *물건을 내놓았습니다. **기업이 회사채를 발행하려 합니다"
등등.

시중자금 흐름이나 금리전망 등에 대해서도 의견을 제시한다.

채권매매 타이밍도 컨설팅해준다.

IMF한파는 우리 모두를 움추러들게 만들었다.

그러나 IMF체제이후의 채권거래 활성화로 "주가"가 한껏 높아진 임과장의
전화 목소리는 더욱 우렁차게 들릴 뿐이다.

< 장진모 기자 jang@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1월 2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