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1월 유러화 출범후 유럽연합(EU)이 취할 경제정책의 방향이 모습을
드러냈다.

EU 15개 회원국중 사회민주주의 정당이 집권한 영국 프랑스 독일 등
11개국 재무장관들은 22일 브뤼셀에서 모임을 갖고 "새로운 유럽의 길"이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 성명에서 재무장관들은 큰 줄기에서는 중도좌파적 노선을 견지하면서도
노동시장에서의 시장기능을 강조하는 등 보수 내지 친기업적 성향도
내비쳤다.

보수와 진보의 절충형인 셈이다.

우선 통화정책과 관련 재무장관들은 유럽중앙은행(ECB)에 대해 "물가안정
못지않게 성장과 고용 문제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는 물가안정을 ECB의 "유일한 목적"으로 규정했던 기존의 마스트리히트
조약과는 뚜렷하게 구별되는 좌파 노선이다.

마스트리히트 조약이 물가안정 만을 강조한 것은 대부분의 EU회원국들이
우파 정권하에 있을 때 체결됐기 때문이다.

재무장관들은 또 ECB의 운영과 관련, 정책결정 과정의 투명성를 유지하고
결정된 정책을 유럽의회에 설명하도록 요구했다.

이와함께 유럽내 노조 및 사용자 단체들과 협의체제를 구축할 것도
제의했다.

재무장관들의 이같은 요구는 ECB의 독립성 문제와 관련, 앞으로 논란이
예상되는 부분이다.

재무장관들은 그러나 재정정책 등에서는 우파 정부들이 취했던 노선을
승계했다.

즉, 재정적자 축소를 규정하고 있는 "안정화및 성장 협약"의 유효성을
재차 확인했다.

그래야만 경기후퇴기에 공공투자 확대등 재정정책 구사가 가능하다는
점도 덧붙였다.

재무장관들은 특히 유럽기업들의 경쟁력 제고 문제를 강조했으며 이를
위해 기업구조조정 과정에서 실업문제가 발생하더라도 정부가 개입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는 유럽의 중도좌파가 점차 기업의 목소리에 귀를 많이 기울이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재무장관들은 이밖에 EU 권역에서 투자및 저축이 이탈하는 것을 막을 수
있도록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를 통한 조세정책의 조정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세계화로 인한 이익이 국제기구 내에서 공정하게 배분돼야 하며
아동노동이나 강제노동의 금지등 적절한 사회, 환경 규범이 마련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같은 성명내용을 분석할 때 오스카 라퐁텐 독일 재무장관의 등장
이후 거론돼온 "유럽연합의 정책 좌경화"는 아직 본격화되지 않은 것으로
평가된다.

이는 사회정의와 복지를 중시하는 이념적 동질성에도 불구하고 경제
여건의 차이로 각국 사회민주주의 정권이 구체적인 정책에서 이견을
보이고 있는 점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번 성명은 우파 정부들이 주도해온 유럽에서 사회당정부들이
공동으로 선언을 발표하고 정책공조를 모색했다는 점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이에대해 루돌프 에들링거 오스트리아 재무장관은 "이번 성명은 확고한
정책 지침은 아니며 이를 토대로 경제정책 방향에 관한 사회당 정부의 공동
입장이 계속 논의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 임혁 기자 limhyuck@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1월 2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