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별곡] (3) '조물주의 선물'..108굽이 굽이마다 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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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상을 보러 가는 길은 망상정의 뒷길로 접어드는 것이 시작이다.
버스가 1백8개의 굽이를 돌고 돌때 문득 떠오르는 의문이 있었다.
이렇게 숨가쁘게 올라가봤자 어차피 "정감록"에서 궁궁을을이라고 말한 바
십승지지를 찾아가는 것도 아닌데 무엇 때문에 이처럼 마음이 먼저 설치는가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막상 만물상길로 접어드니 생각밖으로 길이 잘 닦여 있어서 여유가
생겼다.
그 바람에 씨가 바위에 떨어지매 그냥 앉은 자리에서 뿌리를 내리고 종내
바위를 누르면서 아류드리가 되고 고목이 되어 이날토록 세상을 누리는
소나무 참나무의 장한 모습까지 덤으로 챙기니 그 더욱 다행이었다.
아아, 저 하늘 좀 보라는 소리가 사뭇 요란하여 핑계김에 다리도 좀 쉬어갈
겸 하늘을 우러르니 저것은 또 무슨 색깔이기에 저런 색깔의 하늘도 다
있었더란 말인가.
이제보니 금강산은 하늘도 하늘이 아니었다.
이런 중생의 눈에 비친 하늘은 하늘이 아니라 완전한 관능이었다.
하기야 처음 보는 것으로 치면 하늘색만도 아니었다.
구릉연으로 가는 길에 느낀 것을 이 만물상으로 가는 길에 거듭 느끼는
터이지만, 금강산은 일태면 산도 산이 아니요 물도 물이 아니었다.
산은 산이 아니라 수만수천봉이 봉마다 갈고 닦은 보석이요, 물도 물이
아니라 수만 바위가 수만 바위를 저마다 눌러 자아낸 보물이었다.
그러니 어쨌다는 것인가.
물론 대답이 수월할리가 없다.
그래서 억지로 말을 지어보니 이런 보석과 보물을 이렇게 두고도 마음이
가난한 자는 필경 복이 없는 것임을 알라는 것이었다.
실로 누추하고 비루하기가 중생중에서도 구제불능의 소갈머리였다.
딱하다.
내 안목은 어이하여 이다지도 속되더란 말인가.
가다가 불쑥 만난 것은 어느 화가의 금강산도를 본 것이 인연이라 보느니
처음이면서도 구면인 양 반가운 삼선암이었다.
금강산은 봉마다 얼굴이 다르고 그렇게 다른만큼 전설이 터무니없이 푸짐한
것이, 또한 금강산 다움의 하나요 열이다.
삼선암의 전설도 마땅히 그럴듯한 것이었다.
그렇기로서니 만나는 바위마다 그 전설을 되뇌이다가 편한 길도 더디게 갈
것이랴.
그렇다고 해서 삼선암의 의붓아우처럼 건너편에 되쪽하게 서서 사람의
눈길을 머물게 하는 큰바위까지 모르쇠를 댈 것은 없는 일이었다.
옛날에 네 신선이 바둑을 두는데 그중 한 신선이 자꾸 훈수를 두는 통에
세 신선의 미움을 사서 따로 나가 살게된 독선암이라는 것이었다.
아무려나 내 생각에도 능히 그럴 일이었다.
바둑은 본래가 신선놀음인데다가 신선이 아니더라도 일쑤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르는 놀음이거늘, 하물며 생전 바둑과 남남인 나무꾼도 저마저 모르게
신선이 되기 알맞은 금강산에서 신선끼리 바둑놀음에 훈수라니 그 금강산의
신선들 역시 신선은 신선이 아니었던 모습이다.
삼선암 옆댕이의 고개마루에는 귀면암이 있었다.
생긴 것이 보통은 넘는다고 그런 이름이 붙었으려니와 도대체 이 금강산
에서, 더욱이 이 만물상 동네에서 얼굴이 보통인 바위가 하나라도 있다면
그게 어느 바위인지 답이 따라야 할 것이 아니겠는가.
절부암이라는 쌍바위가 길가에 있었다.
절부암의 전설에 의하면 또 시답잖은 대목에서 신선이 나온다.
금강상의 신선들은 장히 풍류적이었다.
전설을 꾸며낸 위인이 본래 바람 잘 날이 없는 풍류아였기 때문인지도
모를 일이다.
바위마다 물형석이요 전설이 따르니 금강산에서 바위 이름을 새겨듣거나
이루 기억하는 사람은 한가하게 머리를 비워두어 닥치는 대로 쓸어담을 수
있는 사람들일 것이다.
절부암은 절벽을 오르기에 겁이 나거나 더는 뒷심이 달려서 주저앉은
반환점의 등록상표였다.
절부암을 떠나서 망장천에 이르면 대게가 하늘문이라고 해야 알아듣는
통로가 보인다.
하늘문은 그 뒤에 더는 오를만한 데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제부터 그리로 가려면 잠깐 앉아서 기운을 추스려야 한다.
돌아 앉아서 고객를 있는대로 들고 보니 비바람 눈바람 안개바람 서릿바람들
이 조물주를 거들어서 나같은 인간은 백년을 쳐다보아도 못 볼것 같은
물건들을 만들어 늘어 놓은 것이 만물상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어지럽다.
저기가 어디냐고 아무한테나 물어도 짜고 하는 대답처럼 천녀봉과 세지봉의
꼭대기라고 한다.
바위틈에서 근검절약을 간판으로 내건 관청처럼 주는지 마는지 하게 내주는
물을 한모금 얻어 마시니 기운이 나는 것도 같다.
그래서 두 동업자(박범신 이문열)의 얼굴도 보이고 준동업자(유흥준)의
익살도 귀에 들어오고 한다.
북한의 여성 안내원을 붙들고 마음에 있는 말 없는 말 되는대로 늘어 놓는
품이 또 시키지 않은 일을 저지를 모양이다.
나는 그 틈에 끼어들어서 이 나이가 되도록 내 스스로 309년 팬을 자처해온
김지미씨 앞에서도 아직껏 못해본 짓을 하기로 한다.
"동포들을 만나니 정말 반갑습니다. 또 오십시오. 주체 87.(1988)11.21
류정금"
북한의 여성 안내원 류정금씨가 내 수첩에 예쁜 글씨로 해준 "싸인"이다.
나는 용기를 내어 하늘문으로 이어진 사닥다리를 기어오르기 시작한다.
전설에 물을 한모금 마시면 기운이 뻗쳐 짚고 올라온 지팡이도 잊고 간다는
샘이라하여 망장천이라 한다니, 그 물 한모금의 힘인지 그 여성 안내원이
해준 싸인의 힘인지, 둘 다 긴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다.
나는 생각보다 수월하게 하늘문을 지나 오봉산의 정상인 천선대에 이른다.
금강산이 몽땅 내 눈 아래에 있는 듯한 시건방진 생각이 끼어든다.
나는 얼른 고개를 저어 올라오고 남은 힘을 죄다 모아 내버린다.
이제 힘이 들 데가 없어서가 아니다.
나는 터럭끝 만큼도 내노라할 주제가 이님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바닥이 좁아서 더 어릿거리고 있을 수가 없는지라 바위 구석에 없는 듯이
앉아서 쉬갈리는 생각을 주섬거려 본다.
사람들은 흔히 사람의 눈은 다 같다고들 한다.
이치가 있는 말인듯도 하나 과연 그럴 것인지 미심쩍은 데가 있는 듯도
하다.
그야 어느 쪽이든지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 천선대라는 정상에 올랐다고
해도 저도 인간이라면 감히 금강산을 "정복"했노라는 말만은 차마 못하리라
는 것이었다.
산에 오른 것을 정복이라는 말로 나타내는 사람들 흔히 밑바닥에서 나이를
먹었거나 남의 아랫도리로 밥을 먹은 위인들이기 때문인데, 금강호의 탑승객
가운데에는 그런 사람이 하나도 없는 것으로 보였던 것이다.
다음은 금강산을 일만이천봉이라고 줄잡아서 말한 이가 대체 어떤 인물인가
하는 것이었다.
누군지 알 수도 없으려니와 안다고 한들 또 무슨 소용이랴.
어차피 책임질 일이 아닐진대 나는 늘잡아서 십만이천봉이라고 고쳐
말하기로 한다.
또 있다.
아득한 고려적 이야기지만 고려의 시인 최해는 이르기를 "옛날에는 공을
배우지 않는 자라도 그 가운데에 깃들며 살면서 돌아오기를 잊는다" 운운
하였다.
그러나 나는 보이지 않는 데는 보지 못했기에 모를 일이로되 보이는 데는
죄다 신선들이나 깃들여 머물 곳이지 인간이 자리를 잡을 데는 한 구석도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북한 주민이 붙박이로 살지 않고 산을 비워두는 것도 다 그
나름의 이율가 있을 것 같다는 것이다.
나는 남으로 돌아가지만 이미 길눈이 생겼으니 다시 찾아오는 거야 무엇이
어렵겠는가.
금강산이 나로 하여금 뜻을 가꾸도록 하는 이유를 나는 조리있게 설명할
능력이 없다.
그러므로 도리없이 남의 나라 사람들의 표현을 번안하여 이렇게 말하고자
한다.
이 금강산 하나만 봐도 조물주는 우리 한반도 출신이 틀림없을 것 같다.
조물주도 더러는 자고 쉴 때가 있을 법하다.
다만 50년 가까이나 잠에 빠져 아직 깨어나지 않았을 뿐이리라.
누가 믿거나 말거나 오기 전전날부터 가는 날이 다 밝아도 잠이 안 와서
못잔 사람들을 싣고, 금강호는 또 다음날 새벽을 향해 파도를 헤치며 나아갈
것이다.
이문구 < 소설가/경기대 교수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1월 24일자 ).
버스가 1백8개의 굽이를 돌고 돌때 문득 떠오르는 의문이 있었다.
이렇게 숨가쁘게 올라가봤자 어차피 "정감록"에서 궁궁을을이라고 말한 바
십승지지를 찾아가는 것도 아닌데 무엇 때문에 이처럼 마음이 먼저 설치는가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막상 만물상길로 접어드니 생각밖으로 길이 잘 닦여 있어서 여유가
생겼다.
그 바람에 씨가 바위에 떨어지매 그냥 앉은 자리에서 뿌리를 내리고 종내
바위를 누르면서 아류드리가 되고 고목이 되어 이날토록 세상을 누리는
소나무 참나무의 장한 모습까지 덤으로 챙기니 그 더욱 다행이었다.
아아, 저 하늘 좀 보라는 소리가 사뭇 요란하여 핑계김에 다리도 좀 쉬어갈
겸 하늘을 우러르니 저것은 또 무슨 색깔이기에 저런 색깔의 하늘도 다
있었더란 말인가.
이제보니 금강산은 하늘도 하늘이 아니었다.
이런 중생의 눈에 비친 하늘은 하늘이 아니라 완전한 관능이었다.
하기야 처음 보는 것으로 치면 하늘색만도 아니었다.
구릉연으로 가는 길에 느낀 것을 이 만물상으로 가는 길에 거듭 느끼는
터이지만, 금강산은 일태면 산도 산이 아니요 물도 물이 아니었다.
산은 산이 아니라 수만수천봉이 봉마다 갈고 닦은 보석이요, 물도 물이
아니라 수만 바위가 수만 바위를 저마다 눌러 자아낸 보물이었다.
그러니 어쨌다는 것인가.
물론 대답이 수월할리가 없다.
그래서 억지로 말을 지어보니 이런 보석과 보물을 이렇게 두고도 마음이
가난한 자는 필경 복이 없는 것임을 알라는 것이었다.
실로 누추하고 비루하기가 중생중에서도 구제불능의 소갈머리였다.
딱하다.
내 안목은 어이하여 이다지도 속되더란 말인가.
가다가 불쑥 만난 것은 어느 화가의 금강산도를 본 것이 인연이라 보느니
처음이면서도 구면인 양 반가운 삼선암이었다.
금강산은 봉마다 얼굴이 다르고 그렇게 다른만큼 전설이 터무니없이 푸짐한
것이, 또한 금강산 다움의 하나요 열이다.
삼선암의 전설도 마땅히 그럴듯한 것이었다.
그렇기로서니 만나는 바위마다 그 전설을 되뇌이다가 편한 길도 더디게 갈
것이랴.
그렇다고 해서 삼선암의 의붓아우처럼 건너편에 되쪽하게 서서 사람의
눈길을 머물게 하는 큰바위까지 모르쇠를 댈 것은 없는 일이었다.
옛날에 네 신선이 바둑을 두는데 그중 한 신선이 자꾸 훈수를 두는 통에
세 신선의 미움을 사서 따로 나가 살게된 독선암이라는 것이었다.
아무려나 내 생각에도 능히 그럴 일이었다.
바둑은 본래가 신선놀음인데다가 신선이 아니더라도 일쑤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르는 놀음이거늘, 하물며 생전 바둑과 남남인 나무꾼도 저마저 모르게
신선이 되기 알맞은 금강산에서 신선끼리 바둑놀음에 훈수라니 그 금강산의
신선들 역시 신선은 신선이 아니었던 모습이다.
삼선암 옆댕이의 고개마루에는 귀면암이 있었다.
생긴 것이 보통은 넘는다고 그런 이름이 붙었으려니와 도대체 이 금강산
에서, 더욱이 이 만물상 동네에서 얼굴이 보통인 바위가 하나라도 있다면
그게 어느 바위인지 답이 따라야 할 것이 아니겠는가.
절부암이라는 쌍바위가 길가에 있었다.
절부암의 전설에 의하면 또 시답잖은 대목에서 신선이 나온다.
금강상의 신선들은 장히 풍류적이었다.
전설을 꾸며낸 위인이 본래 바람 잘 날이 없는 풍류아였기 때문인지도
모를 일이다.
바위마다 물형석이요 전설이 따르니 금강산에서 바위 이름을 새겨듣거나
이루 기억하는 사람은 한가하게 머리를 비워두어 닥치는 대로 쓸어담을 수
있는 사람들일 것이다.
절부암은 절벽을 오르기에 겁이 나거나 더는 뒷심이 달려서 주저앉은
반환점의 등록상표였다.
절부암을 떠나서 망장천에 이르면 대게가 하늘문이라고 해야 알아듣는
통로가 보인다.
하늘문은 그 뒤에 더는 오를만한 데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제부터 그리로 가려면 잠깐 앉아서 기운을 추스려야 한다.
돌아 앉아서 고객를 있는대로 들고 보니 비바람 눈바람 안개바람 서릿바람들
이 조물주를 거들어서 나같은 인간은 백년을 쳐다보아도 못 볼것 같은
물건들을 만들어 늘어 놓은 것이 만물상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어지럽다.
저기가 어디냐고 아무한테나 물어도 짜고 하는 대답처럼 천녀봉과 세지봉의
꼭대기라고 한다.
바위틈에서 근검절약을 간판으로 내건 관청처럼 주는지 마는지 하게 내주는
물을 한모금 얻어 마시니 기운이 나는 것도 같다.
그래서 두 동업자(박범신 이문열)의 얼굴도 보이고 준동업자(유흥준)의
익살도 귀에 들어오고 한다.
북한의 여성 안내원을 붙들고 마음에 있는 말 없는 말 되는대로 늘어 놓는
품이 또 시키지 않은 일을 저지를 모양이다.
나는 그 틈에 끼어들어서 이 나이가 되도록 내 스스로 309년 팬을 자처해온
김지미씨 앞에서도 아직껏 못해본 짓을 하기로 한다.
"동포들을 만나니 정말 반갑습니다. 또 오십시오. 주체 87.(1988)11.21
류정금"
북한의 여성 안내원 류정금씨가 내 수첩에 예쁜 글씨로 해준 "싸인"이다.
나는 용기를 내어 하늘문으로 이어진 사닥다리를 기어오르기 시작한다.
전설에 물을 한모금 마시면 기운이 뻗쳐 짚고 올라온 지팡이도 잊고 간다는
샘이라하여 망장천이라 한다니, 그 물 한모금의 힘인지 그 여성 안내원이
해준 싸인의 힘인지, 둘 다 긴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다.
나는 생각보다 수월하게 하늘문을 지나 오봉산의 정상인 천선대에 이른다.
금강산이 몽땅 내 눈 아래에 있는 듯한 시건방진 생각이 끼어든다.
나는 얼른 고개를 저어 올라오고 남은 힘을 죄다 모아 내버린다.
이제 힘이 들 데가 없어서가 아니다.
나는 터럭끝 만큼도 내노라할 주제가 이님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바닥이 좁아서 더 어릿거리고 있을 수가 없는지라 바위 구석에 없는 듯이
앉아서 쉬갈리는 생각을 주섬거려 본다.
사람들은 흔히 사람의 눈은 다 같다고들 한다.
이치가 있는 말인듯도 하나 과연 그럴 것인지 미심쩍은 데가 있는 듯도
하다.
그야 어느 쪽이든지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 천선대라는 정상에 올랐다고
해도 저도 인간이라면 감히 금강산을 "정복"했노라는 말만은 차마 못하리라
는 것이었다.
산에 오른 것을 정복이라는 말로 나타내는 사람들 흔히 밑바닥에서 나이를
먹었거나 남의 아랫도리로 밥을 먹은 위인들이기 때문인데, 금강호의 탑승객
가운데에는 그런 사람이 하나도 없는 것으로 보였던 것이다.
다음은 금강산을 일만이천봉이라고 줄잡아서 말한 이가 대체 어떤 인물인가
하는 것이었다.
누군지 알 수도 없으려니와 안다고 한들 또 무슨 소용이랴.
어차피 책임질 일이 아닐진대 나는 늘잡아서 십만이천봉이라고 고쳐
말하기로 한다.
또 있다.
아득한 고려적 이야기지만 고려의 시인 최해는 이르기를 "옛날에는 공을
배우지 않는 자라도 그 가운데에 깃들며 살면서 돌아오기를 잊는다" 운운
하였다.
그러나 나는 보이지 않는 데는 보지 못했기에 모를 일이로되 보이는 데는
죄다 신선들이나 깃들여 머물 곳이지 인간이 자리를 잡을 데는 한 구석도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북한 주민이 붙박이로 살지 않고 산을 비워두는 것도 다 그
나름의 이율가 있을 것 같다는 것이다.
나는 남으로 돌아가지만 이미 길눈이 생겼으니 다시 찾아오는 거야 무엇이
어렵겠는가.
금강산이 나로 하여금 뜻을 가꾸도록 하는 이유를 나는 조리있게 설명할
능력이 없다.
그러므로 도리없이 남의 나라 사람들의 표현을 번안하여 이렇게 말하고자
한다.
이 금강산 하나만 봐도 조물주는 우리 한반도 출신이 틀림없을 것 같다.
조물주도 더러는 자고 쉴 때가 있을 법하다.
다만 50년 가까이나 잠에 빠져 아직 깨어나지 않았을 뿐이리라.
누가 믿거나 말거나 오기 전전날부터 가는 날이 다 밝아도 잠이 안 와서
못잔 사람들을 싣고, 금강호는 또 다음날 새벽을 향해 파도를 헤치며 나아갈
것이다.
이문구 < 소설가/경기대 교수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1월 2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