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중 < 현대자동차 총괄사장
sikim@hyundai-motor.com >

요새 나는 뜰을 불안한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다.

푸른 잎들이 그 반짝이던 모습을 잃어가면서 누런 빛을 띠고 있고, 조락에
겨운 잎들은 보도위를 뒹굴고 있다.

그들이 내는 주술같은 소리에 귀가 멍해지는 듯하다.

몇해전 작은 돌 옆에 심은 자주색 동국이 닥쳐올 추위를 예감이나 한듯
꽃잎을 바짝 세우고 긴장하는 모습도 애처롭거니와 담 옆으로 기어 올라간
담쟁이는 언제 잎이 있었느냐는 듯 앙상한 줄기를 드러내고 있어 스산하기만
하다.

앞뜰에는 아직 가을이 더러 남아 있지만 기온이 뚝 떨어지는 밤이 지날
때마다 한없는 풀꽃들은 고개를 숙이고 죽음을 맞는다.

모든 생명은 죽음을 두려워한다.

왜냐하면 생명에는 즐거움이 있고 그 목적은 유지하는 것에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극적으로 생명이 있는 것은 언젠가는 사멸되게 마련이니 결국
생성과 사멸은 어길수 없는 우주의 질서이며 법칙인 것이다.

하늘은 구름이 가리고, 땅은 낙엽이 덮고 있다.

주전자의 따끈한 물 한모금이 그리운 계절이다.

바람이 불 때마다 쫓겨 다니는 낙엽을 바라보니 머리가 멍해지고 마음이
스산하여 착잡한 심정이 된다.

중국의 문장가 구양수가 추성부에서 "부추형관야(무릇 가을은 형벌집행관
처럼 가혹하다)"라고 읊은 때가 바로 11월의 가을인듯 싶다.

이 가을이 우리를 이렇듯 쓸쓸하고 움츠러들게 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구양수가 읊은 형관보다 더 무서운 "형관"인 IMF체제가 작년 가을부터
우리 사회를 덮고 있기 때문이다.

나뭇잎이 떨어지듯 직업을 잃은 사람들이 거리를 헤매고 단란했던 가족들이
헤어지는가 하면 거리에 몰려나와 노숙을 하고 있다.

기업들이 힘없이 쓰러지고 또 중병을 앓고 있다.

부도를 낸 사장들이 잠적하는가 하면 목숨까지 버리기도 한다.

이처럼 혹독한 IMF라는 "형관"은 "가을형관"에 비할 바가 아닌 것이다.

"가을 형관"은 내년 봄이면 어김없이 사라진다.

문제는 "IMF형관"을 하루빨리 몰아내는 일이다.

비록 내년 봄을 기약할순 없다 해도 우리가 마음만 다 잡는다면 서슬퍼런
"IMF형관"도 끝내 고개를 떨구고 말 것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1월 2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