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jrkim@hws.co.kr >

지난 일요일 KBS의 열린 음악회는 클린턴 대통령의 방한에 맞추어 팝가수인
대통령의 동생도 초청가수로 출연하는 등 한미친선을 다지는 이벤트가 됐다.

그런데 그 무대에 미국의 대통령이 직접 나와 동생과 포옹을 하고
청중들에게 인사를 하고 나가는 장면은 우리의 정서로서는 매우 인상적일 수
밖에 없다.

기왕에 섹스폰이라도 한곡 연주해 주었으면 금상첨화가 됐겠으나 어떻든
대중문화에 익숙한 미국대통령의 일면을 목도하였다.

그런데 과연 우리나라 고위공직자가 그 상황이었으면 그런 딴따라(?) 무대에
설수 있을까.

아마도 아직은 "노"일 것이다.

이것이 어쩌면 우리와 미국의 문화나 정서차이 일런지 모른다.

우선 우리나라 지도급인사나 명문가로 자처하는 사람들은 집안에 딴따라가
있다는 사실을 애써 감추려한다.

옛날 사당패 같은 사회적 천시는 없어졌다고 하겠으나 최소한 공개적인
지원이나 통혼은 허용치 않고 있는 것이다.

그만큼 우리사회에 유교적 전통의 뿌리와 대중문화에 대한 편견이 깊다는
뜻이다.

이런 편견은 문화계 내부에서조차 대단히 깊다고 듣고 있다.

지금은 국민의 노래가 된 이동원의 "향수"를 단지 대중가수와 함께
불렀다는 이유로 박인수교수가 국립오페라단으로부터 파문아닌 파문을
당했다던가 KBS의 열린 음악회에 성악가를 초청하기가 그토록 어려운 이유가
바로 고상한 음악인이 어찌 그 저속한(?) 무대에 설수 있느냐는 대학사회의
폐쇄성과 오만이다.

음악이란 듣는 사람이 좋으면 됐지 왜 그러한 장르의 구획이 필요한가.

대중음악과 클래식의 만남은 얼마든지 있다.

플라시도 도밍고와 존덴버의 합동공연이 그러하고 파바로티가 예스터데이를
부르기도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대통령도 자주 음악회에 나오고 연예인들과 격의 없이 어울리는
모습을 보고 싶다.

오늘의 젊은이들은 그런 대통령을 사랑한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1월 2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