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홍열 한국신용정보(주) 사장 >

골프에서 처음 라운드하는 것을 처녀의 첫날밤 신밤행사에 비유해서 머리를
얹는다고 한다.

골퍼들은 누구나 처음 골프장에 나갔을 때의 추억을 갖고 있다.

비록 지금은 조자룡이 헌칼 쓰듯 드라이버를 능숙하게 휘두르고 있는
한자릿수의 핸디캐퍼도 역사적인 첫 티샷에서는 체를 두번 세번 휘둘러도
공을 헛치기만 했던 끔찍한 기억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다.

티샷을 할 때는 보통 뒤에서 여러 사람이 숨을 죽이며 지켜보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심리적으로 커다란 부담을 주게 마련이다.

하물며 머리얹은 때의 첫 티샷일 경우는 결혼 첫날밤에 치르는 행사처럼
비몽사몽간에 체를 휘두르게 되니 공이 제대로 맞을 리 없다.

골프장에 처음 나가는 초보자들은 연습장에서 그런대로 잘 맞던 아이언 샷
도 긴장으로 몸이 굳어져 대부분 뒷땅치기 아니면 토핑이기 일쑤다.

보통 머리얹을 때는 동반자들이 아량을 베풀어 멀리건도 여러개 주고
공이 홀 근처에만 가도 무조건 기브를 주게 마련이다.

그러고도 대부분이 백수십타를 치게 되는데 그러다 보면 열여덟 홀을
언제 돌았는지, 공을 몇개 잃어버렸는지 알 수도 없이 플레이가 끝나 버린다.

그늘집에서 먹는 음식이 아무리 맛있어도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제대로 맛도 못느낀다.

더욱이 머리를 얹으러 나온 사람은 동반자들로부터 각종 잔소리와 충고를
듣게 된다.

다른 사람이 샷할때는 아무리 입이 근지러워도 침묵하고 움직이지도 말라.

이스샷을 했을 때에는 진행을 위하여 그린 위에서도 퍼팅라인을 밟으면
안된다.

하여튼 밖의 사회에서는 아무리 잘난 사람도 골프장에서도 완전히 훈련병
이나 촌닭이 된다.

진행이 늦다고 입이 나와 있는 도우미 아가씨의 눈치를 보면서 땀을 뻘뻘
흘리며 코스를 뛰어 다니다 보면 왜 진작 골프를 시작하지 못했는지 은근히
부아가 나기도 하고 자존심도 무척 상한다.

우리나라 골프장은 초보자라고 해도 진행을 늦게하는 것을 용인해주지
않는다.

그러나 백문이 불여일행이듯이 골프관련 지침서를 아무리 여러권 독파하고
연습장에서 열심히 연습해도 결혼 첫날밤처럼 통과의례를 위해 머리를
얹어야만 하며 그래야 비로소 골퍼로서의 자격을 인정받게 된다.

골퍼들은 아무쪼록 초보때의 경험을 되새겨서 머리얹는 사람이 당황하지
않도록 세심한 배려를 해줘야 한다.

그래야만 머리를 얹어준 고마운 사람으로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수 있을
것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1월 2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