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우리 건축을 "국적없는 건축"이라고 꼬집는다.

서울을 둘러본 외국인들은 마치 현대 건축시장을 보는 것 같다고 말한다.

우리만의 전통성을 가진 건축물이 그만큼 적다는 얘기다.

그러나 조금만 관심을 갖고 보면 우리의 옛모습과 전통을 간직한 건축물들
이 곳곳에 남아있다.

소수이지만 그 전통을 현대화하려는 사람들의 노력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건축가 류경수씨(37)가 펴낸 "우리 옛 건축에 담긴 표정들"(대원사)은
건축에 대한 이해를 새롭게 해주는 역작으로 꼽힌다.

전북대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청암건축사진연구소 삼안엔지니어링
건축연구소 탑 등에서 일한 그는 5년전부터 전국을 답사하며 옛 건축을
사진에 담았다.

이 책에는 궁궐 성곽 사찰 향교 서원 살림집 등 실물 유구 30여곳이 6백여장
의 사진과 함께 설명돼 있다.

책에 실린 사진 순서대로 따라가며 답사할 수 있도록 꾸몄다.

우리 건축의 공간구성과 환경의 조화에 초점을 맞춘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먼저 궁궐편에는 경복궁과 창경궁 창덕궁 낙선재 종묘 임해전지 등이
소개돼 있다.

이중 경주 안압지 서쪽의 임해전지는 신라인들의 뛰어난 조경술을 엿보게
하는 궁궐터.

해안에 접해 있는데다 바다와 섬을 여러 각도에서 보고 즐기도록 설계돼
있어 눈길을 끈다.

성곽편에서는 과학과 효심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최고의 예술품 수원 화성,
자연과의 조화가 기막힌 남한산성을 다뤘다.

사찰편에서는 부석사와 불국사 송광사 해인사 통도사 화엄사를 통해
불국토를 형상화한 수도 공간의 조화미를 살폈다.

서원편에서는 서원 양식을 최초로 정립한 도산서원과 병산서원의 공간미를
분석했다.

살림집편에 가면 경주 향단과 관가정, 안동의 양진당과 충효당, 예산의
추사 고택, 담양의 소쇄원, 정읍의 김동수 가옥 등 13채의 개인살림집을
구경할 수 있다.

저자가 이 책에서 줄곧 강조하는 고건축의 특성은 자연과의 조화다.

그는 대표적인 예로 지붕과 주춧돌을 든다.

하늘과 맞닿은 지붕이나 땅에 몸을 댄 주춧돌이 천.지.인의 전통 의식과
잘 맞아 떨어진다.

그는 각 건축물의 표정과 배치 공간구성 특징 등을 일일이 주변 환경과
연결지어 설명함으로써 일반인의 이해를 도와준다.

책에 실린 사진들은 웬만한 예술작품에 견주어도 손색이 없어 보인다.

흑백으로 처리돼 명암대비가 선명하고 구도도 매우 입체적으로 잡혀 있다.

특히 궁궐 내부에서 찍은 사진들은 일반 독자가 볼 수 없었던 "구중궁궐"의
속내를 보여주는 백미다.

내년 "건축문화의 해"를 앞두고 우리 옛 건축의 아름다움과 의미를 한눈에
조명해 볼수 있는 책이다.

< 고두현 기자 kdh@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1월 2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