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 경제백서-무역] 수출지원정책 : 보따리무역..상인 육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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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그룹에서 부장까지 지내다가 지난 5월 명예퇴직한 오모(44)씨.
사업을 했다간 모두 날릴 것이란 주변의 조언을 충실히 따라 그동안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덕분에 퇴지금 8천만원은 고스란히 지킬 수 있었다.
"잃어버린셈 치고 1천만원만 투자할 곳은 없을까"하고 있던 그는 ''선배
실업자''인 친구를 따라 중국에 가게 됐다.
지난 9월의 일이었다.
친구는 베이징(북경)과 톈진(천진)을 오가며 옷을 파는 "보따리 무역상".
오씨는 5일간 친구를 따라다니다 가슴이 뛰는 걸 느꼈다.
그는 요즘 한달에 열흘은 중국에서 산다.
아직까지는 친구를 보조하는 수준이지만 가끔씩 자기가 선정한 아이템을
다 팔고 오는 때도 있다.
나머지 20여일은 남대문 동대문 등 재래시장을 뒤지거나 중국어를 배우고
있다.
내년초에는 사업자등록증을 내고 어엿한 사장 명함도 새길 계획이다.
보따리 하나에 희망을 담고 세계를 누비는 소규모 무역상들이 크게 늘고
있다.
생산성본부 등 관련 강좌를 개설한 기관들은 특수를 누리고 있다.
무역업계 관계자들은 현재 직업이 보따리 무역상으로 활동중인 사람이 최소
3천~4천명, 많게는 1만여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특히 대량실업이 본격화되기 시작한 하반기부터 급증하고 있는 추세다.
보따리 무역상이 크게 늘고 있는 이유는 여러가지다.
우선 창업비용이 거의 들지 않는다.
기업형으로 크게 하는 경우도 있지만 글자 그대로 보따리 무역인 경우는
수백만원으로 시작할 수도 있다.
국내에서 신용이 있는 사람은 외상으로 물건을 떼갈 수도 있다.
또 외국에서 주로 일하는 관계로 "얼굴"이 팔리지 않는다.
경우에 따라서는 큰 돈을 버는 수도 있다.
운이 좋으면 2배를 남기는 경우도 있다.
1천만원 어치를 사서 나가면 1천만원이 고스란히 떨어진다는 얘기다.
뿐만 아니다.
무역실무와 외국어를 익힐 수 있어 경기호황기를 대비한 직업훈련으로도
안성맞춤이다.
"개미군단"들이 늘어가면서 보따리 무역 규모도 커지고 있다.
인천세관 집계에 따르면 작년에는 한달 평균 4백50t의 경공업 제품이
"보따리"에 담겨 중국 등지로 수출됐다.
그러다 지난 6월 1천60t이 통관돼 처음으로 1천t을 넘어섰다.
이후 8월 1천1백75t, 9월 1천6백70t 등 규모는 계속 늘고 있다.
보따리 무역이 벌어들이는 달러규모도 만만치 않다.
인천항터미널에서 중국으로 출발하는 보따리상들의 물동량은 1주일에 평균
컨테이너 1백개분량.
보통 컨테이너 1개에는 1억~2억원어치가 실린다.
1년치를 모으면 5천억~1조원이 된다는 계산이다.
품목도 다양해지고 있다.
서울 남대문과 동대문시장에서 판매하는 할인의류에서 양말 모자 전기밥솥
손톱깎이 위성안테나 등 경공업제품군은 거의 없는 것이 없을 정도다.
여기에 국내기업이 중국 현지기업에 보내는 원단과 피혁도 가세한다.
수년전만 해도 옷이나 가전제품 몇 종류에 불과했다.
규모도 커져 지금은 기업형으로 변모하고 있다.
케니트레이딩이나 SDS ED인터내셔널 등 중국 보따리무역을 기업화한 무역
회사들도 하나둘씩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그렇다고 보따리만 들고가면 돈을 버는 것은 아니다.
특히 최근에는 보따리 무역 환경이 크게 악화됐다.
우선 환율덕을 보지 못하고 있다.
달러당 1천2백원대로 원화가치가 높아지면서 마진폭이 상당히 줄었다.
특히 새로운 보따리 대상으로 각광받던 러시아의 경우는 상반기까지만 해도
의류와 중고자동차 수출지로 각광받았으나 지난 8월 모라토리엄을 선언한
이후에는 장사가 잘 되지 않고 있다.
여기다 보따리 장사들이 너무 많이 늘어 경쟁이 심화되면서 갖고 갔던 물건
을 처분 못하는 경우도 심심찮게 발생하고 있다.
그러나 소자본 창업으로 이만한게 없다.
생산성본부 관계자는 "중국의 경우 외국제품에 대한 수요가 아직도 많은데다
우리나라 제품의 품질이 좋은 것으로 알려져 가능성은 풍부하다"고 말했다.
"일본의 경우도 초기에 개척이 힘들뿐 고객관리만 잘하면 지속적인 수출이
가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주)대우 관계자는 "한탕주의를 버리고 전문무역 도매상이나 내수 도매상을
발굴해 관리하면 전망은 밝은 편"이라고 말했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1월 30일자 ).
사업을 했다간 모두 날릴 것이란 주변의 조언을 충실히 따라 그동안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덕분에 퇴지금 8천만원은 고스란히 지킬 수 있었다.
"잃어버린셈 치고 1천만원만 투자할 곳은 없을까"하고 있던 그는 ''선배
실업자''인 친구를 따라 중국에 가게 됐다.
지난 9월의 일이었다.
친구는 베이징(북경)과 톈진(천진)을 오가며 옷을 파는 "보따리 무역상".
오씨는 5일간 친구를 따라다니다 가슴이 뛰는 걸 느꼈다.
그는 요즘 한달에 열흘은 중국에서 산다.
아직까지는 친구를 보조하는 수준이지만 가끔씩 자기가 선정한 아이템을
다 팔고 오는 때도 있다.
나머지 20여일은 남대문 동대문 등 재래시장을 뒤지거나 중국어를 배우고
있다.
내년초에는 사업자등록증을 내고 어엿한 사장 명함도 새길 계획이다.
보따리 하나에 희망을 담고 세계를 누비는 소규모 무역상들이 크게 늘고
있다.
생산성본부 등 관련 강좌를 개설한 기관들은 특수를 누리고 있다.
무역업계 관계자들은 현재 직업이 보따리 무역상으로 활동중인 사람이 최소
3천~4천명, 많게는 1만여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특히 대량실업이 본격화되기 시작한 하반기부터 급증하고 있는 추세다.
보따리 무역상이 크게 늘고 있는 이유는 여러가지다.
우선 창업비용이 거의 들지 않는다.
기업형으로 크게 하는 경우도 있지만 글자 그대로 보따리 무역인 경우는
수백만원으로 시작할 수도 있다.
국내에서 신용이 있는 사람은 외상으로 물건을 떼갈 수도 있다.
또 외국에서 주로 일하는 관계로 "얼굴"이 팔리지 않는다.
경우에 따라서는 큰 돈을 버는 수도 있다.
운이 좋으면 2배를 남기는 경우도 있다.
1천만원 어치를 사서 나가면 1천만원이 고스란히 떨어진다는 얘기다.
뿐만 아니다.
무역실무와 외국어를 익힐 수 있어 경기호황기를 대비한 직업훈련으로도
안성맞춤이다.
"개미군단"들이 늘어가면서 보따리 무역 규모도 커지고 있다.
인천세관 집계에 따르면 작년에는 한달 평균 4백50t의 경공업 제품이
"보따리"에 담겨 중국 등지로 수출됐다.
그러다 지난 6월 1천60t이 통관돼 처음으로 1천t을 넘어섰다.
이후 8월 1천1백75t, 9월 1천6백70t 등 규모는 계속 늘고 있다.
보따리 무역이 벌어들이는 달러규모도 만만치 않다.
인천항터미널에서 중국으로 출발하는 보따리상들의 물동량은 1주일에 평균
컨테이너 1백개분량.
보통 컨테이너 1개에는 1억~2억원어치가 실린다.
1년치를 모으면 5천억~1조원이 된다는 계산이다.
품목도 다양해지고 있다.
서울 남대문과 동대문시장에서 판매하는 할인의류에서 양말 모자 전기밥솥
손톱깎이 위성안테나 등 경공업제품군은 거의 없는 것이 없을 정도다.
여기에 국내기업이 중국 현지기업에 보내는 원단과 피혁도 가세한다.
수년전만 해도 옷이나 가전제품 몇 종류에 불과했다.
규모도 커져 지금은 기업형으로 변모하고 있다.
케니트레이딩이나 SDS ED인터내셔널 등 중국 보따리무역을 기업화한 무역
회사들도 하나둘씩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그렇다고 보따리만 들고가면 돈을 버는 것은 아니다.
특히 최근에는 보따리 무역 환경이 크게 악화됐다.
우선 환율덕을 보지 못하고 있다.
달러당 1천2백원대로 원화가치가 높아지면서 마진폭이 상당히 줄었다.
특히 새로운 보따리 대상으로 각광받던 러시아의 경우는 상반기까지만 해도
의류와 중고자동차 수출지로 각광받았으나 지난 8월 모라토리엄을 선언한
이후에는 장사가 잘 되지 않고 있다.
여기다 보따리 장사들이 너무 많이 늘어 경쟁이 심화되면서 갖고 갔던 물건
을 처분 못하는 경우도 심심찮게 발생하고 있다.
그러나 소자본 창업으로 이만한게 없다.
생산성본부 관계자는 "중국의 경우 외국제품에 대한 수요가 아직도 많은데다
우리나라 제품의 품질이 좋은 것으로 알려져 가능성은 풍부하다"고 말했다.
"일본의 경우도 초기에 개척이 힘들뿐 고객관리만 잘하면 지속적인 수출이
가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주)대우 관계자는 "한탕주의를 버리고 전문무역 도매상이나 내수 도매상을
발굴해 관리하면 전망은 밝은 편"이라고 말했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1월 3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