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증시가 또 한번의 가파른 상승 커브를 그리고 있는 요즘, 월가에서는
연방준비제도 이사회(FRB)가 공개한 한 문건의 내용이 화제다.

FRB가 지난 17일 3차 금리인하를 단행한 직후 공개한 "금융정책 비망록"
이다.

여기에는 지난번 두차례의 금리인하 결정과정이 담겨 있다.

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어떤 이야기가 오고 갔는지 까지 상세하게
기록돼 있다.

3차 금리인하 결정에 대한 비망록은 크리스마스 이브인 내달 24일 공개될
예정이다.

이번 비망록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애당초 금융완화로의 선회 자체에 대해
부정적인 연준위원들이 적지 않았다는 대목이다.

그동안 증시의 "비이성적 활황(irrational exuberance)", 즉 거품을 경고
하며 여차하면 금리를 올릴 것임을 공언해온 FRB가 돌연 금리인하 쪽으로
돌아서는 것은 시기상조 아니냐는 의견이었다.

그런 FRB가 금리인하를 결정한 직접적인 원인은 증시안에 금리인하에 대한
기대감이 이미 폭넓게 확산돼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1차 인하 폭(0.25% 포인트)이 너무 적었던 데 대한 증시의 실망감"이 가장
큰 요인이었다는 얘기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증시의 요구" 때문이었다는 말이다.

세계 동시불황 등의 요인은 부차적이었다.

미국 증시는 FRB의 이런 "지원"에 힘입어 언제 빈사상태를 헤맸느냐 싶게
급상승 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증시의 대세몰이식 활황이 재현되면서 그동안 주가급락을 경고하며 보유주
처분을 권고했던 비관론자들 대부분이 낙관론 쪽으로 속속 전향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그러나 한 쪽에서는 요즘의 증시활황이 또 다른 거품에 그칠 것임을 경고
하는 목소리도 여전히 높다.

아시아와 중남미,러시아 등의 경제위기나 그로인한 미국 제조업체들의
수익성 급락 등 구조적인 악재들은 별반 해결된 게 없기 때문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런 상황에서 FRB가 지난 17일 3차 금리인하를 결정하게
된 것 역시 "시장의 힘"에 휘둘린 결과로 보고 있다.

국내외 경제상황에 대한 중립적인 판단에 의거했다기 보다 "시장이 원하기
때문에" 마지못해 따라 준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시장의 전횡"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 뉴욕타임스 등 미국 언론에서는 "정부의 정책에 따라
증시가 움직이는게 아니라 증시의 움직임에 맞춰 정책이 결정되고 있다"는
지적이 공공연히 제기되고 있다.

전문가들이 더욱 우려하는 것은 증시가 과연 투자자들의 합리적인 판단에
의해 주도되고 있느냐는 대목이다.

투자자들이 요즘 돈을 싸들고 증시로 달려드는 이유는 미국 경제나 주식
시장이 확실하게 좋아질 것이라는 믿음보다는 "그저 주위 사람들이 증시로
몰리고 있기 때문"인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있게 나오고 있다.

한국이 미국식 금융 시스템을 전면적으로 도입하도록 요구받고 있는 상황
이어서 증권시장의 지난친 힘을 우려하는 미국내의 목소리가 예사롭지 않게
들린다.

< 뉴욕=이학영 특파원 hyrhee@earthlink.net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1월 3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