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한승원(59)씨가 오랫만에 서울 나들이를 했다.

2년전 고향인 전남 장흥 바닷가에 집을 짓고 들어앉았던 그가 장편소설
"꿈"(전2권 문이당)을 안고 상경한 것이다.

이 소설은 서포 김만중의 국문소설 "구운몽"을 새로운 시각으로 재창작한
작품.

부제를 "이설본 구운몽"이라고 붙이고 줄거리 일부와 등장인물을 빌어왔다.

수도중인 성진이 육관대사의 뜻에 따라 인간세상으로 환생하는 도입부도
닮았다.

양소유로 다시 태어난 그는 과거급제 후 외침을 막아내는 등 공을 세워
천자의 공주를 비롯한 여덟 여자를 처첩으로 맞는다.

아들 하나 딸 일곱을 둔 그는 세상의 부귀영화를 다 누리지만 사위들이
역적 모의에 연루돼 일가족 참수의 위기에 처한다.

망나니들이 아내와 자식들의 목에 칼날을 대고 희룽거리는 순간, "차라리
꿈이라면..."하고 발버둥치던 그는 호통소리에 꿈을 깬다.

이 작품이 원작 구운몽과 다른 점은 여성(팔선녀)들의 현실 대응방식과
이야기를 풀어가는 기법, 작가 특유의 묘사력에 힘입은 이미지 상승효과
등이다.

원작에는 여덟 미녀가 무조건 한 남자를 섬기도록 설정돼 있지만 여기서는
여자들이 이상적인 남성의 유전자를 얻기 위해 주체적으로 선택권을
행사한다.

또 "하늘을 움켜잡고 뙈기를 칠"만큼 충일된 생명력과 성적 에너지가
팽팽하게 당겨진다.

그 힘의 율동이 소설 전체를 뜨겁게 달구면서 무색계의 해탈과 묘한
대비를 이룬다.

이상향의 의미도 단순한 유토피아가 아니라 "꿈과 참의 경계가 없는
영역"으로 확장된다.

꿈에서 깬 성진은 뒤통수를 후려치는 "빛"을 발견하고 그속에서 "꿈과
세상은 둘이 아니고 하나"라는 깨달음을 얻는다.

그래서 이 소설은 참된 자유의 세계로 나아가기 위한 정토찾기, 혹은
이상세계 꿈꾸기 과정으로 읽힌다.

작가는 20여년간 "구운몽"에 대한 신화적, 정신분석학적, 철학적 접근을
시도했고 집필하는데 3년을 보냈다.

어떤 때는 김만중이 유배됐던 남해 노도를 찾아가 수풀 무성한 섬 중턱의
옛집터에 오래 앉아있곤 했다.

쪽빛 물너울과 바다 물빛을 닮은 서울쪽 하늘, 그 속으로 날아가는 구름을
바라보며 "꿈"의 의미를 되새겼다.

3백년 전 김만중이 혼자 있는 어머니를 위로하기 위해 붓을 잡았다면,
한씨는 우리 곁에 있는 수많은 이웃들의 "거품같은 삶"을 어루만져주기
위해 이 작품을 쓴 것이다.

그는 "개인이나 국가 민족을 막론하고 힘든 시기에는 장자의 생각처럼 꿈
이야기가 가장 좋은 처방"이라며 "구운은 아홉장의 구름, 아홉 사람의 꿈이
아니라 불교의 극락, 도교의 초월세계, 기독교의 천국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 고두현 기자 kdh@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1월 3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