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내 역 앞을 천천히 지나가는 마차와 마부들, 서대문 근처에서
쨍그랑쨍그랑 종을 울리는 전차..."

소설가 공지영(35)씨의 장편 "봉순이 언니"(푸른숲)에는 60~70년대 서울
풍경이 흑백사진처럼 인화돼 있다.

작가의 태생지인 아현동 언저리를 배경으로 다섯살짜리 "짱아"가 식모
"봉순이 언니"를 통해 세상에 눈 떠가는 과정이 72개의 일화에 담겨 있다.

봉순이 언니는 더부살이 "식순이"지만 우는 "나"를 달래주고 투정도
받아주는 모성의 원형이다.

그러나 가족이 아파트로 이사하고 식모 대신 파출부를 쓰면서 그녀와의
교감은 느슨해진다.

이후 그녀는 불행으로 모자이크된 보자기처럼 험난한 삶을 감내하고
거기에 등을 돌린 나는 죄책감으로 괴로워한다.

작가는 두사람의 운명을 교직시켜 희망과 반성의 무늬를 하나씩 짜 나간다.

이 작품은 "나"보다 "봉순이"의 관점에서 읽을 때 더 웅숭깊은 맛을
느낄 수 있다.

근대화 과정에서 처연하게 짓눌리면서도 인간애와 순정을 잃지 않는
그녀의 일생은 중산층으로 수직상승한 "짱아"가족의 허위의식을 되비추는
거울이기 때문이다.

개발연대의 빛바랜 액자 속에 두 사람의 명암을 선명하게 대비시킨
그림.

우리들의 과거와 현재를 양면거울로 번갈아 보여주는 작품이다.

< 고두현 기자 kdh@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1월 3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