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백만 일자리를 만들자"

한국 정부의 슬로건이 아니다.

"종신고용"의 대명사로 불리는 일본의 슬로건이다.

일본 정부는 지난달 16일 사상최대인 24조엔 규모의 긴급경제대책을 발표
하면서 정책 목표의 하나로 "1백만 고용창출"을 선언했다.

소극적 고용유지에 치중해온 노동정책의 기본 방향을 적극적 "일자리
만들기"로 바꾼 것이다.

일본의 고용사정은 현재 전후 최악이다.

실업율은 사상최고인 4.3%를 3개월째 유지하고 있다.

특히 세대주 실업율이 3%대에 육박해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실업자수는 2백90만명으로 3백만명에 육박해 있다.

기업도산이나 구조조정에 따른 비자발적 실업이 94만명에 이른다.

젊은층을 중심으로한 자발적 실업도 1백만명을 넘어섰다.

유효구인배율(구직자에 대한 구인수요 배율)도 0.48배로 사상최저다.

취업을 하려는 사람은 많지만 받아주겠다고 나서는 곳이 없다.

종신고용의 나라라는 표현이 무색할 정도다.

일본정부는 "1백만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1조엔규모의 고용창출 특별기금
을 창설했다.

지난 4월 발표된 종합경기대책 당시의 5백억엔에 비해 무려 20배에 이르는
규모다.

이 1조엔은 98년도 3차보정예산에 우선 3천억엔이 반영되고 나머지 7천억엔
은 내년도 노동보험 특별회계에 포함시킬 방침이다.

1백만 일자리를 만들어내기 위한 대책가운데 핵심은 역시 기업창업 지원
이다.

"앞으로 2년동안 10만개의 회사를 설립토록 한다"는게 일본정부의 큰
그림이다.

취업을 늘리려면 기업을 많이 만드는 것 외엔 길이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이다.

일본정부는 1조원의 자금을 별도로 만들어 새로운 아이디어를 사업화하고
판로개척을 지원하는데 쓸 예정이다.

최소 1백만엔에서 최대 5백만엔까지 모두 1천건을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중소기업에 최대 1천만엔까지 지원하는 특별융자는 제3자 지급보증이라는
조건도 붙이지 않는다.

스톡옵션(주식매입 선택권) 발행한도도 기존의 2배(총주식발행수의 20%)로
확대하기로 했다.

정부의 연구개발비 역시 벤처기업에 집중 배분하기로 했다.

일본 정부는 첫해의 연구개발 지원규모를 1백억엔으로 잡고 있다.

실업자가 회사를 창업하거나 기존 중소기업이 새로운 분야에 진출할 경우
에도 보조금을 지급할 방침이다.

노동 시장의 유동화 촉진도 주요대책으로 꼽힌다.

건축 토목 등 일부 업종을 제외하고는 근로자파견 대상사업을 자유화하기로
했다.

지금은 사무기기조작 통역 번역 속기 등 26개 업종만 인재파견이 가능한
업종이다.

일본 정부는 직업안정법을 개정해 민간의 유료 직업안내 사업을 활성화하고
인재비즈니스에 대한 규제를 철폐해 노동수급 조절기능을 강화할 방침이다.

중.노년층의 재취업 지원도 본격화한다.

화이트컬러 실업자 수만명을 대상으로 재무 정보통신 등 직업훈련강좌를
실시키로 한 것은 재취업사업의 핵심 추진사항이다.

훈련기간중에는 기한에 관계 없이 실업수당을 계속 지원해 일정한 소득을
보장해 준다.

세이야 노동성 차관은 "긴급경제대책으로 인한 고용창출효과가 97만명을
넘을 것"이라며 기대를 표명하고 있다.

경제대책으로 실질국내총생산(GDP)이 2.3% 증가해 37만명 이상을 흡수하고
고용급부금 지급증액 등을 내용으로 하는 각종 고용활성화 플랜으로 60만명
의 고용을 창출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물론 일본 정부의 1백만 일자리 만들기가 말처럼 쉽지만는 않을 것이라는
민간연구소 등의 지적도 적지 않다.

첫번째 이유는 예산지원 문제다.

관계자들은 일자리 만들기 예산이 명목상 크게 늘어나기는 했지만 이를
위해 다른 조성금 지급을 줄이는 만큼 전체적인 효과는 제로섬이 될
것이라는 점을 지적한다.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다.

화이트컬러에 요구되는 기능이 회사에 따라 다른 만큼 단순히 직업훈련을
늘린다고 해서 재취업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구체성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다.

게이오대 히로구치 교수는 "이번 고용 대책을 범정부적으로 추진하지
못하고 노동부가 주도한 것이 구체성을 결여하게 만든 요인"이라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이런 문제들은 우리나라의 일자리 만들기 계획에도 참조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 도쿄=김경식 특파원 kimks@dc4.so-net.ne.jp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2월 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