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11개국의 단일통화인 유러화의 출범이 한달 앞으로 다가왔지만 구조
조정의 회오리에 휘말린 국내 금융계나 기업들로부터 별다른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아무리 당장의 위기수습이 급하다고
해도 유러화의 출범은 세계경제질서에 지각변동을 불러올 수 있는 엄청난
사건인 만큼 관심을 갖고 대비를 서둘러야 하겠다. 그렇지 않으면 국제금융
시장의 격변에 무방비로 노출돼 또다른 외환위기를 겪게 될지 모르기 때문
이다.

유러화의 출범이 몰고올 충격과 변화는 다양하지만 가장 주목해야 할 대목
은 기축통화인 달러위상이 흔들릴 가능성이다. 전후 브래튼우즈체제에서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이 대외준비금을 달러자산으로 보유하고 민간기업도 달러로
대외무역을 결제함에 따라 미국은 금융산업이 막강한 국제경쟁력을 갖게 되고
각국 거시경제정책의 조율을 주도하는 등 엄청난 혜택을 누려왔다.

유러화가 출범하면 유럽은 수백억달러에 달하는 금융비용을 절감하고
환리스크가 없어짐에 따라 교역이 활성화되며 조만간 유럽통합증시가 세계
최대의 증시로 발돋움하는 등의 기대효과를 갖게 된다. 이처럼 미국과 맞먹는
경제력을 바탕으로 유러화가 달러의 기축통화 자리를 넘보게 되면 각국 정부
와 중앙은행은 대외준비자산의 일부를 달러 대신 유러화로 보유하게 되고
이에따라 달러약세가 예상된다.

최근 독일 재무장관인 라퐁텐이 목표환율대(target zone)를 제의한 것도
유러화가 강세를 보일 경우 당장 경기부양을 통해 고용창출을 꾀하고 있는
사민당정부의 경제정책이 타격을 받을까봐 걱정했기 때문이다. 유럽의 높은
실업률과 정책조율의 어려움 때문에 달러가 유러화에 대해 강세를 보이리라는
반론도 있는 등 당분간은 국제금융동향이 불확실할 것이므로 환율추이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국내에서는 유러화의 시중유통이 오는 2002년부터 시작되므로 아직 시간
여유가 있다고 보지만 유럽은 현금거래 비중이 20%대에 불과하기 때문에
당장 내년부터 유러화의 영향력이 나타나게 된다. 따라서 국내기업 및 금융
기관들은 우선 급한대로 유러화관련 외환업무를 처리하기 위한 회계처리 및
전산시스템을 서둘러 갖춰야 한다. 그리고 은행원과 고객들에 대한 교육 및
홍보를 강화해야 한다.

유럽금융의 중심지로 떠오를 프랑크푸르트에 거점을 마련하고 통합된 유럽
금융시장을 외화조달창구로 활용하는 방안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유럽
시장의 통합에 대비한 마케팅 및 영업전략도 면밀히 재검토하고 현지조직을
통합.재편하며 각종 소프트웨어나 정보통신기기 및 자동화기기 등 유러화
출범과 관련된 전략수출품목의 수요증대에 대비해야 한다.

유러화 출범을 계기로 가속화될 유럽과 미국간의 주도권 쟁탈전을 또하나의
기회로 활용하는 지혜가 아쉬운 때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2월 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