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경제의 비약적 발전을 선도해온 기업부문은 IMF체제 1년이 채 못돼
주저앉았다.

몸집에 비해 허약하기 이를데 없는 체질을 드러냈다.

작년까지만 해도 일부 산업은 설비능력면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고
있다고 자부했다.

이들 산업엔 지금 "중복.과잉투자 업종"이란 낙인이 찍혀 있다.

대기업 그룹마다 세계 초일류기업을 지향했던게 1년전이다.

지금까지 그 꿈을 버리지 않은 그룹은 손에 꼽을 정도다.

대기업뿐 아니다.

중소기업계는 직격탄을 맞았다.

사장들은 패가망신해 빚쟁이에게 쫓기고 설비는 고철로도 안팔린다.

IMF 1년은 대기업 중소기업 가릴 것 없이 시련이었다.

고물가 고환율 고금리 등 "고자" 행진이 계속되면서 실물경기 하강속도는
더욱 빨라졌다.

기업주들은 살아남기 위해서 급전을 찾아다녔지만 은행은 제 살기에 바빴다.

운영자금이 없는 중소기업들이 늘면서 연쇄부도 행진이 계속됐다.

돈 앞에는 대기업도 별 수 없었다.

한보와 삼미가 부도를 낸 것을 시작으로 진로 해태 동아 한라 거평 한일
뉴코아 나산 등이 부도나 화의신청 등으로 무릎을 꿇었다.

급성장으로 주목받던 거평 신호 등 신흥그룹들은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이라는 "마취없는 외과수술"을 받고 있다.

쌍용 한화 두산 효성 고합 한솔 대상 등 대부분 그룹들이 공장과 회사를
팔아가며 목숨을 부지하고 있다.

자금에 여유가 있는 5대그룹도 예외가 아니었다.

주력기업을 팔아서라도 외자를 유치하라는 안팎의 기대섞인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이미 7개 업종은 과잉.중복투자라는 판정을 받아 그룹에서 사실상 분리했다.

IMF가 기업에 고통만을 준 것은 아니다.

체질을 바꿀 기회도 같이 줬다.

무엇보다 속도와 외형에 집착했던 과거의 경영관행에 대해 반성할 수
있었다.

바뀌지 않으면 죽는다는 진리를 비싼 수업료를 내고 깨달았다.

본의 아니게 구조조정을 하게 됐지만 어쨌든 21세기형 사업구조를 갖출 수
있게도 됐다.

중요한 것은 기업구조조정이 이제 시작이라는 점이다.

살아남았다고 끝나는게 아니다.

경기침체가 몇년간 계속될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치열한 내부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좌승희 한국경제연구원장은 "구조조정의 화두를 경쟁에서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쟁 지향의 경영관행을 정착시켜야 살아남고 또 발전할 수 있다"는 설명
이다.

< 권영설 기자 yskwon@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2월 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