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계의 투명성, 국제회계기준, 결합재무제표, 회계감리, 금융기관회계준칙..

IMF시대를 살면서 국민들이 심심찮게 접하게 된 회계용어들이다.

작년만해도 회계전문가 모임에서나 들을 수 있었던 난해한 말이 이젠 낯설지
않은 용어가 됐다.

IMF의 한국 상륙이후 1년동안 "회계개혁"이 숨가쁘게 전개되면서 사용빈도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IMF사태 직전 외국인들은 투자자금을 앞다퉈 거둬들이면서 "한국 기업
회계처리는 믿을 수 없다"는 불신을 철수의 변으로 자주 들먹였었다.

IMF체제이후 외국인투자자들은 한국을 다시 찾는 필수 조건으로 회계의
투명성을 요구했다.

분식회계가 스며들기 쉬운 회계제도와 관행을 국제기준으로 뜯어고치라는
처방전이다.

분식회계에 대한 근절의지가 약했다는 국내발 각성과 더불어 IMF체제이후
회계부문에서는 사실상 제도의 틀을 다시 짜는 혁명이 불었다.

제도개선 공청회가 줄을 이었고 법률개정 작업이 뒤따랐다.

회계부문은 1년전과 비교해 판이하게 달라져 회계사들조차도 새 제도와
규정을 공부해야 할 정도다.

대기업그룹의 내부거래와 자금흐름을 투명하게 볼 수 있는 결합재무제표
제도가 완성됐다.

세계적으로 사례가 없는 회계제도다.

일부에서는 한국 대기업의 내부사업기밀이 새어나가 덤핑제소등에 악용될
우려가 있다고 걱정할 정도로 투명한 제도가 완비됐다.

기업회계기준도 새로 제정한 것처럼 대수술을 했다.

국제회계기준과 구미제도의 장점을 벤치마킹했다.

이에따라 한국기업들은 외환손이 많다는 이유로 손실액을 몇년간 분할해
조금씩 털어냈던 옛날 생각을 버려야 하게 됐다.

한해의 외환손실을 바로 그 사업연도 장부에 반영해 적자를 숨김없이
공개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회계처리방법을 변경해 흑자를 늘리는 "합법적 분식"도 용서받지 못한다.

감가상각비나 기술개발비 처리기준을 엄격하게 제한하는 규정이 회계기준
개선안에 들어있기 때문이다.

채권같은 유가증권도 평가가 공정하게 이뤄지도록 기준을 엄하게 만들었다.

은행 증권 보험등 금융기관들이 업종 특수성을 내세워 "회계상 면책특권"을
받아온 관행도 철퇴를 맞았다.

금융기관별 회계준칙이 제정됨으로써 은행과 증권사도 일반법(기업회계기준)
의 테두리안에서 회계장부를 작성해야 하는 격세지감을 느끼고 있다.

말썽이 됐던 파생금융상품의 회계처리방법에까지 새로운 기준이, 그것도
미국식으로 만들어졌다.

기업들이 따라야할 회계규정에 대해선 외국인들도 흠을 못잡을 만큼
정비작업이 말끔하게 끝난 셈이다.

기업의 회계장부를 공정하게 감사할 의무가 있는 공인회계사들의 책임도
무거워진다.

증권감독원은 감리(공인회계사가 적정하게 감사했는지를 조사하는 것)에서
고의성이 있거나 중대한 과실이 발견되면 회계사에 대한 형사고발도
불사하겠다고 경고했다.

공인회계사회는 IBRD의 요구로 새로운 회계감사수칙을 정비하고 있다.

회계사가 기업감사를 할때 어떻게 해야될지를 아주 구체적으로 나열하는
책 한권 분량의 수칙을 만들어 내년초에 발표할 예정이다.

한국에서도 감사수칙이 없었던게 아니지만 행동지침을 세세하게 나열한
미국식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다.

IMF체제이후 1년동안 회계에 대한 제도개혁은 마무리됐지만 새 제도가
과연 무리없이 뿌리내릴지는 확신할 수 없다.

공인회계사회의 남상묵전무는 "한국 회계는 이제부터 진짜 변신해야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인위적으로 급하게 만들어진 제도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오랜 기간동안 진화된 회계제도라야 기능을 원활히 수행할
수있다는 것이다.

새 회계기준의 핵심인 외환손 당기처리를 예로들면 환율변동이 심한 한국
같은 나라에서 어떻게 한해에 외환손 전액을 다 처리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이다.

미국처럼 환율변동이 심하지 않은 선진국과 회계환경 자체가 다르다는
지적이다.

기본적으로 한국 기업은 소유와 경영이 분리되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회계의 투명성을 확보하기가 힘든 조건을 안고 있다.

미국은 소유와 경영이 분리돼 있어 공인회계사는 주주들의 이익만 대변하면
된다.

자연히 경영 실적을 냉정하게 감사하게 된다.

반면 한국에서는 경영인이 바로 기업 소유자이기 때문에 아무리 엄격한
제도가 마련돼도 올바른 회계감사를 기대하기가 힘들다.

이와 관련해 증권감독원 회계관리국의 유재규 부국장은 "주주들이나
채권자들이 회계부실에 대해 민사소송등을 통해 응징하려는 풍토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회계의 투명성을 위해선 아직도 갈길이 멀다는 얘기다.

< 양홍모 기자 yang@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2월 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