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7월이 되면 "현대" "삼성"이라는 이름표가 붙은 재무제표가
등장한다.

예컨대 현대자동차 현대건설등 계열사의 개별 재무제표가 아닌 현대그룹
전체의 재무상태를 한 눈에 보여주는 결합재무제표가 작성되는 것이다.

30대 그룹은 예외없이 99회계연도부터 결합재무제표를 작성해 일반에
공시해야 한다.

결합재무제표는 계열사끼리 상품이나 자금거래로 인해 부풀려지는
순이익이나 매출을 제거시켜 기업집단의 실질적인 재무상태를 보여준다.

예컨대 H그룹의 A가 같은 계열인 B사로부터 2천만원어치의 물품을 사들여
이를 내다팔았다고 하자.

A사와 B사의 개별 재무제표에는 각각 2천만원의 매출이 잡히게 된다.

H그룹 전체로도 4천만원의 매출이 발생한 셈이다.

그러나 결합재무제표에서는 H그룹의 회계장부에 2천만원의 매출만 기재된다.

계열사간 거래에서 발생한 매출액 2천만원이 제거되기 때문이다.

결합재무제표에서 내부거래를 이처럼 상계처리하는 것은 같은 식구끼리
손바꿈한 것을 "물건을 팔았다"고 볼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국내 대기업들은 내부거래를 통한 실적부풀리기가 일상화돼 왔다.

연말이면 유행처럼 번지는 밀어내기식 수출도 상당수가 해외계열사에
수출물량을 떠넘겨 실적쌓기 수단으로 악용돼 온 사례다.

그러나 결합재무제표에서는 실질적인 지배관계에 있는 국내외 모든
계열사가 포함되므로 내부거래를 통한 매출늘리기는 무의미해지게 된다.

결합재무제표의 또다른 특징은 어느 계열사에 자금을 얼마나 지원했고
지원받았는가를 일목요연하게 파악할 수 있다는 점이다.

계열사간 자본출자 상호지급보증 담보제공 자금대차등의 자금거래내역이
세세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우량계열사가 부실계열사를 지원한 내역이 여과없이 노출될 수밖에 없어
부당지원거래를 억제하는 효과도 거둘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특히 결합재무제표의 작성지침을 세부적으로 정한 준칙에서 이른바
매트릭스 (matrix) 형식의 공시를 명문화함으로써 일반투자자들도
그룹계열사간 내부자거래를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했다.

매트릭스 공시는 바둑판 방식으로 가로축과 세로축에 각각 계열회사를
명시하고 교차하는 좌표에 출자금액이나 지급보증액등을 표시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특정 A사가 B, C, D사에 각각 얼마를 지원했는지를 한 눈에
알 수 있다.

또 B사가 A,C,D사에 지원한 것과 C사가 A, B, D사에 지원할 내용을
구체적으로 찾아낼 수 있다.

이런 투명성때문에 재계에서는 매트릭스 공시 도입에 반발해 결국
매출거래를 매트릭스 공시 대상에서 제외하기도 했다.

외국법인들이 결합재무제표상의 매트릭스 공시를 반덤핑 제소에 악용할
가능성이 있다는 기업계의 비판이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회계전문가들은 대기업그룹들이 결합재무제표를 싫어하는 것은
상계처리로 인해 매출거품등이 없어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측면도 있지만
매트릭스 공시로 상계처리 내용이 상세하게 공개된다는 점을 극도로
우려하고 있다는 지적을 하고 있다.

증권감독원의 추산에 따르면 결합재무제표에 포함되는 계열사가 삼성그룹은
2백43개, 현대그룹 1백64개, LG그룹 1백45개, 대우그룹이 2백49개사에
이른다.

결합재무제표는 그룹의 속사정까지 낱낱이 노출시킨다는 점에서 작성준칙이
확정된 지금까지도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내부거래 상계처리로 그룹 전체 매출과 순이익의 급감이 불가피하고
부채비율도 크게 높아져 대외신인도가 추락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그러나 IMF의 결합재무제표 작성요구 이유이기도 한 왜곡된 기업관행
개선효과나 정확한 재무정보 제공이라는 순기능이 훨씬 크다는게 중론이다.

< 박영태 기자 pyt@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2월 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