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한 편에 삼만원이면/너무 박하다 싶다가도/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
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이 되네"

시인 함민복(36)씨는 시집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에 실린 시 "긍정적인
밥"에서 돈과 시의 관계를 이렇게 표현했다.

가난하면서도 따뜻한 시인의 내면을 잘 드러낸 작품이지만 참으로 눈물나는
고백이다.

그는 시만 써서 먹고 사는 전업시인이다.

그러나 "시가 밥먹여 주는 세상"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꿈일 뿐이다.

강화도에서 친척 집에 얹혀사는 그는 IMF한파 때문에 가장 혹독한 겨울을
맞고 있다.

애초부터 원고료만으로 생계를 꾸려가겠다는 생각은 "맹랑한 결심"이었다.

그렇더라도 올 겨울은 너무 삭막하고 을씨년스럽다.

30대 후반 전업작가 P씨의 경험담은 더 우울하다.

"얼마전 큰 아이가 학교 갔다 오더니 아빠 월급이 16만원이냐고 물어요.
신문에 난 문인 설문조사 결과를 보고 하는 소리였죠. 애한테 뭐라고 얘기
해줘야 할지 막막해서 아주 곤혹스러웠습니다"

IMF체제 이후 문인들의 원고료 수입은 그야말로 입에 풀칠하기에도 버거울
만큼 빈약해졌다.

지난 9월 민족문학작가회의(이사장 신경림)가 여론조사기관인 글로벌 리서치
와 함께 회원 7백7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문인들의 월평균 원고료
수입은 16만9천원에 불과했다.

IMF체제 이전의 23만7천원보다 29%가량 줄어든 것이다.

이 조사에서 전업작가는 전체 문인의 13.1%로 나타났다.

이들 중에서도 연간 수입이 1천만원 이상이라고 응답한 경우는 30.6%에
그쳤다.

나머지 문인들은 교직(30%)이나 출판분야(14.1%)에 종사하는 경우가 많았다.

배우자의 수입에 의존하는 문인들도 14.6%나 됐다.

아르바이트나 일용직 노동자로 일하는 문인은 6%로 집계됐다.

가만히 있어도 원고청탁과 선인세가 들어오던 인기 작가들마저 이제는
탈고된 원고를 들고 책 좀 내달라고 뛰어다니는 판국이다.

90년대 들어 전업작가로 변신한 문인들 대부분이 대책없는 실업자로 전락한
셈이다.

"한국문학"을 비롯한 여러 문예지들이 휴간에 들어갔고 남은 문예지들도
원고료를 감당하지 못해 지면을 대폭 줄였다.

문인들을 주요 필자로 삼았던 잡지와 사보 지면도 거의 없어졌다.

젊은 작가 S씨는 호경기 때 주간지와 사보에 월평균 콩트 5편을 써서
1백만원씩의 수입을 올렸으나 올들어 청탁이 일절 끊겨 천장만 바라보고
있다.

작가 K씨의 한달 수입은 80만원선.

이중 원고료는 30만원 정도다.

문학창작교실에서 매달 받는 강사료 50만원이 가장 큰 고정수입이다.

어쩌다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하지만 그것도 가뭄에 콩나듯 해서 꿈자리가
불편하기는 마찬가지다.

요즘 문인들은 정부의 "문학원고은행"(가칭) 설립에 다소 기대를 걸고 있다.

문화관광부가 이달초 문학인들의 창작의욕을 북돋우기 위해 내년부터
2003년까지 매년 10억원을 지원키로 하고 99년 예산안에 반영한 것이다.

총 50억원 규모의 "문학원고은행"이 설치되면 문인들의 원고료 수입이
나아질 것으로 보인다.

지원대상은 시 소설 수필 희곡 아동문학 평론 등 6개 장르의 신진 문인.

제출된 원고를 심사해 작품별로 지원금을 지급한다.

이럴 경우 매년 1백여명이 평균 1천만원씩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의 생계는 당분간 위축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문인들의 창작 열기는 여전히 뜨겁다.

민족문학작가회의 설문조사에서도 "어렵지만 창작열의가 더 생겼거나 예전과
다름없다"고 대답한 문인이 78.8%였다.

아무리 힘들어도 인간과 사회의 존재이유를 지키는 사명감은 잃지 않겠다는
의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위기라는 "맞바람"을 무방비로 맞고 있는 시인.

작가들의 겨울은 어느 때보다 춥고 힘겨워 보인다.

< 고두현 기자 kdh@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2월 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