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이나 제도가 관습을 앞지르지 못한다는 말이 있지만 음력설을 지키는
한국인의 집착을 보면 그 말을 실감하게 된다.

그럴만한 이유가 없는 것은 아니다.

1895년까지 우리는 음력설 밖에 몰랐다.

일제가 신정을 강요했기 때문에 신정은 "일본설"이고 구정이 "우리설"로
인식됐던 것은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광복후에도 양력이 기준력으로 사용되고 49년 "관공서 공휴일에 관한 규정"
이 만들어지면서 50년부터 신정은 3일 연휴로 지정됐다.

설날은 이중과세라는 이유로 공휴일로 채택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85년에 와서야 "민속의날"이라는 이름으로 구정에도 하루를
쉬었다.

그래도 기업에서 설날 사흘 이상을 쉬자 규정을 다시 고쳐 90년부터
설연휴를 3일로 늘리고 신정연휴를 하루 줄여 2일로 정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설연휴가 3일로 늘어나자 신정을 쇠던 사람들이 다시 설을 쇠기 시작하고
있다.

신정은 명절이 아니라 오히려 가족여행의 휴일로 변해가는 추세다.

아무래도 유구한 역사를 지니고 있는 구정의 본질적 내용과 의미는 신정과
곧바로 대체될 수만은 없는 모양이다.

정부가 내년부터 신정 일을 1일로 줄이겠다는 방침을 갑작스레 발표하자
마치 큰 혼란이라도 일어날 것처럼 사회가 떠들썩하다.

이에 이미 인쇄된 달력은 그대로 쓰면되고 신정다음날이 토요일로 이어지는
만큼 여행사나 항공사도 크게 손해 볼 일은 없을듯 싶은데 어떨지 모르겠다.

17일이나 되는 우리의 법정 공휴일은 외국보다 많다.

특히 5일이나 되는 신정 구정연휴는 언젠가는 재검토해야 할 문제였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대통령의 의지가 신정휴일축소였다면 국민생활과 직결된 일인만큼
좀더 일찌기 알려 공론화시켜야 하지 않았을까.

대통령의 말 한마디가 법이어야 한다는 식의 생각은 "졸속행정"이라는
비난을 면할 수 없다.

어떻든 온 국민이 일제히 일손을 놓는 날이 많은 것은 지금 나라형편으로
봐서도 권장할 일은 못된다.

사회가 떠들썩 한것은 오히려 졸속행정에 대한 항의가 아닌가 싶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2월 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