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년 증시는 한국경제가 처한 위기와 기회를 생생하게 담아낸 현장보고서
였다.

주가는 IMF(국제통화기금) 관리체제라는 사상 초유의 폭격사태에 사선을
넘나들었다.

연초 385에서 시작안 종합주가지수는 IMF의 자금지원과 함께 국가부도
사태를 넘어서기도 했다.

그러나 고금리와 금융권의 신용경색으로 무더기 기업부도 사태가 빚어진데다
아시아 경제위시마저 확산되자 주가는 다시 300선이 무너지면서 280까지 폭락
하는 수렁에 빠지기도 했다.

이후에도 일본발 세계 공황론, 러시아의 모라토리엄 선언, 뉴욕주가 폭락
사태 등 한국증시는 국제금융시장에 몰아치는 폭풍우를 고스란히 맞아야
했다.

9월 들어 세계경제위시를 수습하려는 선진국의 노력, 특히 금리인하로
대표된든 각국의 경기부양책에 한국주가도 간신히 기력을 차린 상태다.

일부에선 "세계경제 위시는 끝났다"거나 "내년 상반기에 경기가 바닥을 치고
다시 이륙에 나설 것"이라는 등의 낙관론이 쏟아져 나온다.

그러나 위기상황은 잠복돼 있을뿐 본질적으로 달라진 것이 없다는 신중론도
만만찮다.

<> 큰 손으로 등장한 외국인 =증시의 주인공이 국내기관에서 외국인으로
바뀌었다.

IMF프로그램에 따라 포철 한전 등 공공기업과 이동통신 데이콤 등 통신업체
를 제외한 일반기업의 외국인 주식보유 한도가 철폐된데다 외국인은 한번
움직이면 무더기로 자금을 쏟아붓는 탓에 주가는 외국인의 손바닥을
벗어나지 못했다.

지난 1, 2월에 외국인이 3조8천억원어치의 주식을 사들이자 주가가 50%나
폭등했는가 하면 5월부터 8월까지 넉달동안 4천5백억원어치를 팔아치우자
주가도 300선을 벗어나지 못했다.

10, 11월 두달간 1조4천억원어치의 주식을 사들이자 300선에서 기진맥진해
있던 주가는 450선으로 용솟음쳤다.

국내 투자자 입장에선 철저히 외국인의 움직임을 뒤쫓아 갈 수밖에 없었다.

증권사에선 외국인의 투자판단에 영향을 미칠만한 국제뉴스를 따라잡기에,
그들의 주문동향을 살피기에 바빴다.

아침 장이 열리기 전에 외국인의 주문동향을 살피는 것이 하루 일과의
시작이 됐다.

외국인의 "사자"주문이 많은 것으로 알려지면 한발 앞서 주가가 오르는
"커닝" 현상마저 나타났다.

<> 조막손으로 전락한 국내기관 =외국인이 증시를 뒤흔들 수 있었던 것은
역시 국내기관이 조막손으로 전락한 때문이다.

안으로는 극심한 구조조정의 압력에 시달리는데다 불투명하기 짝이 없는
경제전망은 국내기관을 한껏 움츠리게 만들었다.

증권 투신 은행 보험등 국내 기관은 올들어 단 한차례도 순매수한 달이
없다.

11월까지 무려 5조원어치를 내다팔았다.

연초 16조원에 이르렀던 보유주식 규모가 11조원으로 줄어들었다.

앞으로도 더 줄일 수밖에 없는 처지다.

BIS(국제결제은행)기준 자기자본비율을 맞춰야 하는 은행은 주식을
위험자산으로 못박아뒀다.

증권사에도 상품주식은 애물단지에 다름 아니다.

상품주식을 다 털어낸 증권사도 수두룩하다.

제몸을 지키기에 바쁜 투신사도 고유계정 주식을 줄일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국내기관의 이런 속사정은 이해할 수 있지만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선진증시일수록 기관투자가를 통한 간접투자 비중이
높은데 이같은 기관의 비중축소는 필경 자본시장의 성장을 멈추게 할 것이고
우량기업 지분이 몽땅 외국인에게 넘어가는 사태도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 환율과의 숨바꼭질 =98년 한해 증시기류를 좌우한 가장 큰 변수는
환율이었다.

외국인은 물론 국내 투자자도 환율과의 숨바꼭질을 계속했다.

달러당 원화가치가 1천8백원까지 폭락하면 외국인 매수세가 폭발했고
1천3백원대까지 오르면 어김없이 매물이 쏟아지곤 했다.

일본 엔화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반응을 보였다.

지난 6월 엔화가치가 1백40엔대로 떨어지자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주식을
내다팔았고 10월들어 1백15엔까지 올라가자 다시 주식을 사들였다.

주가는 경기전망이 움직이는 것이 정상이지만 통화가치가 주가를 결정했다
는 것은 결국 국제금융시장에 불안요인이 가시지 않았음을 뜻한다.

아시아 주식에 접근하는 외국인의 이런 집단적인 투자판단이 결국은
아시아주가 동조화 현상을 만들어냈다.

태국 인도네시아 대만 홍콩 등 아시아 주가는 1년내내 같이 오르고 같이
내리는 어깨동무가 됐다.

7월말 뉴욕주가가 폭락사태를 빚어낸 이후엔 세계주가 동조화 현상으로
이어졌다.

뉴욕주가를 통해 세계금융시장의 불안 여부를 간접적으로 판단하려는
노력이 본격화된 때문이다.

세계주가 동조화 현상의 한 모서리에 한국이 끼어있는 것은 좋게보면
자본시장 완전개방의 성과라고 할 수 있지만 달리보면 아직은 국내 경제변수
가 증시에 먹혀들 공간을 찾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바깥에서 먹구름이 몰려오면 폭풍우를 맞을 수밖에 없는 구조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개별기업의 영업내용이나 전망보다 세계경제 기상도가 중시되다보니
숲만 있고 나무는 없는 장세가 펼쳐졌다.

한해 증시에 떠돈 루머도 개별종목에 관한 것은 거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 위험으로부터의 탈출 =한해 증시가 막을 내리려 하지만 재미를 봤다는
투자자를 찾아보기 어렵다.

주가를 흔드는 변수가 과거와 달라진데다 움직이는 속도도 워낙 빨라
도무지 과거의 잣대로는 주가흐름을 따라잡기가 어려웠다.

상반기엔 자고나면 한두개 상장사가 부도를 내 투자자를 당황케 했다.

5천원을 밑도는 주식이 한때 70%에 육박할 만큼 주가파괴가 극심했다.

그러니 시중자금이 고금리 상품에 뭉칫돈으로 몰려드는 일이 벌어졌고
MMF(머니마켓 펀드)와 공사채형 수익증권 판매수수료가 증권사의 주수입원
으로 변하는 기현상마저 벌어졌다.

모두가 위험으로부터의 탈출을 시도한 한해였다.

국내기관이 주식투자에 승부를 걸지 못하고 프로그램 매매에 열중하고 있는
것도 위험관리의 한 방법이다.

선물시장은 현물시장에서 갈라져 나온 작은 집이지만 두 시장에 다리를
걸치고 있는 프로그램 매매는 이제 현물주가를 좌우할 만큼 규모가 부풀었다.

프로그램 매매에 대한 이해가 없이는 현물주식 투자를 하기 어려운 시대가
됐다.

<> 99년 전망과 과제 =99년 증시도 큰 폭의 등락을 되풀이 할 것이란
전망이 많다.

세계경제가 수축되고 있는 만큼 한국경제가 깨어난다고 해도 과거와 같은
회복세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에 비해 국제금융시장의 불안은 아직도 잔설처럼 남아있는 상태다.

금융위기를 겪은 브라질 멕시코에서도 경제가 위기를 겪은 후 70~80%에
이르는 주가등락이 거듭됐다.

대수술을 받은 경제가 정상맥박을 찾은 후에야 주가도 정상적인 리듬을
되찾았다.

한 증권사의 국제부 관계자는 "외국인 사이에서도 경제전망을 중시하는
정통파는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주식비중을 아직도 늘리지 않고 있는 반면
투자비중을 늘린 쪽은 과거 중남미의 경제위기 때 큰 돈을 만진 이들이 많다"
며 "이런 점으로 미뤄보면 향후 경제에 대한 기대보다는 과거의 경험을
중시하고 세계적인 저금리가 일궈내는 금융장세에 편승하려는 경향이 더
강하다"고 관찰했다.

대수술을 받은 금융권이 신용을 창출해내기 시작했다.

군살을 도려낸 기업도 다시 전열을 가다듬었다.

정부도 경제 회생노력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국제금융시장에 지뢰가 터지지 않는다면 99년 증시는 기대해 볼만하다.

다만 98년 기업공개가 2개사 1백95억원에 그친데서 보듯 자본시장이
산업자금 공급원으로서의 역할을 해내지 못한 점, 외국인의 돈이 아니면
지탱하기 어려운 증시의 자생력 상실 같은 것은 99년으로 넘어가는 숙제가
됐다.

[ 특별취재반 허정구 양홍모 최인한 조성근 장진모
김홍열 박준동 송태형 박영태 기자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2월 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