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유가 하락이 세계경제에 반드시 플러스 요인으로만 작용하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지금처럼 유가하락이 연일 사상 최저치를 기록할 경우 중동을 비롯한
산유국 경제가 치명타를 맞고 그 여파로 세계금융시장이 다시 어려움을
당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실제 국제유가는 7일에도 북해산 브렌트유가 한때 배럴당 9.92달러까지
떨어졌다.

지난 86년 7월 이후 최저치다.

석유생산국들도 나름대로 바삐 움직이고 있다.

걸프협력회의(GCC) 석유장관들은 8일 내년 3월부터 생산량을 줄인다는데
원칙적으로 합의했다.

석유수출국기구(OPEC) 등에도 동참을 요구할 계획이다.

덕분에 이날 브렌트유(1월물)가 배럴당 10.36달러에 거래되는 등 유가는
소폭 반등했다.

그러나 이같은 합의가 유가부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지난 11월 OPEC 회원국들이 감산계획을 수립했지만 생산량은 예상만큼
줄어들지 않고 있다.

나이지리아 등 일부 국가는 생산량을 늘렸다.

이번 합의가 선언으로 끝나고 산유국들의 재정압박이 더 심해질 가능성이
높아는 얘기다.

메릴린치증권의 공공정책담당 이코노미스트인 자크 라베리는 최근
보고서에서 "원유가격의 하락은 세계경제의 안정보다는 오히려 국제금융
시장을 한층 더 불안하게 만드는 등 폐해가 적지 않다"고 경고했다.

지금까지만해도 낮은 석유가격은 아시아 미국 등 주요 석유 소비국 경제에
이득을 주는 쪽으로만 분석되어 왔었다.

인플레 압박이 완화되고 기업 생산 코스트가 줄어들어 경제성장에 청신호로
간주돼 왔다.

라베리는 그러나 이미 외환위기를 겪고 있는 러시아 멕시코 베네수엘라
등 산유국들은 유가하락으로 극심한 경제난에 직면하고 있는 만큼 유가
하락을 마냥 반길 수는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IBRD)도 올해 유가수준이 지난해보다
24%정도 하락할 것으로 보고 러시아등 산유국들의 재정상태를 예측한
다음 이를 기준으로 금융지원계획을 마련했었다.

그러나 국제석유가격은 서부텍사스중질유(WTI)를 기준으로 작년보다 이미
46%나 떨어진 수준에서 거래되고 있어 예상을 빗나가고 있다.

중동경제도 이미 파탄지경에 이르렀다.

그동안 원유판매로 안정적인 경제성장을 지속해온 중동경제가 유가폭락으로
재정적자가 급증했고 이에 따라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로 추락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IMF도 "아시아 러시아 중남미에 이어 중동국가들마저 금융위기에 휘말릴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했다.

이란은 이미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해놓고 있다.

최대 석유수출국인 사우디아라비아도 예산적자 보전을 위해 아랍에미리트에
50억달러의 차관도입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우디는 국내총생산(GDP)의 11%에 달하는 1백50억달러의 재정적자에
시달리고 있다.

< 김수찬 기자 ksch@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2월 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