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대그룹 구조조정안이 정.재계간담회에서 확정되던 7일 오후 청와대.

이날 회의 분위기는 어느때보다 화기애애했으며 김대통령은 너무 기분이
좋아 평소보다 많은 말을 했다.

참석했던 기업인이나 은행장들도 앓던 이를 뺀 표정들이었다.

과정이야 힘들었지만 어찌됐든 이번 간담회로 정부가 국민 세금으로 부실을
도려내주기로 약속한 셈이 됐기 때문이었다.

같은 시각 마포의 대우전자 본사 사무실.

일류대학을 나오고 10년 경력의 김종수(가명.37) 과장은 허탈한 심정으로
정.재계 간담회 TV 뉴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열심히 일만 해왔는데 결과는 해고위기라니...

도무지 일손이 잡히지 않았다.

이날 부산에 자리잡은 삼성자동차 공장에선 대우로의 통합에 반대하는
시위가 벌어졌으며 남대문로 삼성본관 앞에선 그룹 최고경영진이 자동차
투자에 책임져야 한다는 시위가 있었다.

구조조정 대상 9개업종 관련기업, 이들 대기업에 부품을 공급하는 수많은
중소협력업체들에 다니는 임직원들도 세밑을 앞두고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이들에게 "구조조정이 아주 잘됐다" "경기가 바닥을 치고 이제 회복세로
돌아섰다"고 말하 는 청와대와 관료들의 목소리가 귀에 들어올 것인가.

이들은 "누구를 위한 구조조정인가"라는 근본적 의문을 제기한다.

재벌의 선단식 경영구조를 해체한다고 해서, 계열사수를 절반으로 줄인다고
해서 경쟁력이 높아질 것인가라고 묻는다.

이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단순히 일자리를 잃을지도 모른다는게 아니다.

혹시라도 정치적 쇼에 놀아난 건 아닌지, 수많은 희생자를 내고도 오히려
국력은 뒷걸음친 한국을 후손들에게 물려주지는 않을지가 더 두려운 것이다.

강현철 < 산업1부 기자 hckang@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2월 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