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1년간은 국내 기업들에 고통의 해이면서 극심한 변화의 해이기도 했다.

대기업은 결코 망하지 않는다는 "대마불사"의 신화가 깨지면서 기업들은
새로운 질서와 법칙에 적응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뛰어야 했다.

과거 40년 가까이 굳어온 경영 패러다임은 지난 1년동안 완전히 바뀌었다.

기업들은 외환 및 금융위기에 따른 유동성위기라는 발등의 불을 끄기에도
힘겨운 상황에서 기존 경영구조와 관행을 뜯어고쳐야 했다.

올 한해 기업 경영상 가장 큰 변화는 시장 원리의 본격적인 작동을 들수
있다.

대마불사 원리에 입각한 확장경영, 선단식 경영은 더이상 통하지 않게
됐으며 경쟁력을 상실한 기업은 5대그룹 계열이라도 즉시 퇴출되는 운명을
맞아야 했다.

이는 기업들이 경영 목표를 과거 매출과 시장 점유율 중심에서 손익과
현금흐름 중시쪽으로 바꾸는 계기로 작용했다.

금융위기로 뜨거운 맛을 본 기업들은 현금과 유동성 확보를 지상과제로
여겼으며 과거와 달리 수익을 낼수 없는 사업이라면 과감하게 철수하거나
퇴출을 결정했다.

투자자들도 이제 매출액이나 시장점유율을 따지는 대신 현금흐름이 좋고
얼마나 순이익을 많이 내는지를 기준으로 투자대상을 결정하기 시작했다.

시장중시 경영은 곧 국내 기업들의 경영 패러다임이 한국식에서 벗어나
미국식으로 대표되는 글로벌 스탠더드로 변화해감을 의미한다.

지배 대주주 중심의 기업 지배구조는 사외이사의 선임과 전문경영인 등용,
지배주주의 대표이사 등재등을 통해 소유와 경영의 분리 쪽으로 나아가고
있으며 주주들의 이익이 경영 최우선 목표가 됐다.

노동시장에선 정리해고가 도입되면서 고용과 해고가 상대적으로
유연해졌으며 기업회계도 국제회계기준을 맞추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 됐다.

기업들은 이같은 변화에 맞춰 조직도 계층구조에서 네트워크 구조로
바꾸었다.

결국 지난 1년간은 국내기업에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알리는 한해였던
셈이다.

대부분의 기업들이 바뀐 환경에 적응하느라 허둥댔지만 변화의 흐름을 읽고
미리 대처해 IMF 시대에 오히려 성장과 도약의 계기를 마련한 기업들도 적지
않다.

삼성전자 포항제철 동양화학 종근당 범양상선 등 잘 나가고 있는 기업들은
모두 손익과 현금흐름을 중시했으며 돈 되는 사업이라면 무조건 뛰어들고
보던 스타일에서 탈피해 경영 역량에 맞게 사업분야를 선택하고 여기에
집중했다.

또 한계사업을 조기 정리해 재무구조를 튼튼히 하는 한편 앞선 기술과
마케팅으로 시장을 선도했다.

그 결과 극심한 경기불황의 와중에서도 올해 적게는 수십억원, 많게는
수천억원의 이익을 낼 전망이다.

올해 매출과 순이익을 괄목할만하게 늘린 기업들의 특징을 분석해 보면
우리기업이 나아갈 길이 무엇인지 쉽게 답을 찾을수 있다.

올해 잘 나가고 있는 기업은 크게 세가지 유형으로 분류된다.

첫째가 선택과 집중을 통해 핵심역량을 강화한 기업이다.

예컨대 동양화학은 반도체용 화학재료, 농약사업 등을 외국기업에 매각해
소다회및 정밀화학 본업에 집중하면서 실적이 크게 좋아졌다.

상반기에만 5백22억원의 순이익을 냈다.

극동전선은 선박용 전선시장에 경영자원을 집중하면서 세계시장의 30%를
차지하고 있으며 고려제강도 와이어로프 분야를 특화해 이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시장점유율을 보이고 있다.

또 영진출판사는 컴퓨터 관련 서적으로 특화해 다른 출판사가 불황에
허덕이고 있는 상황에서도 재미를 보고 있다.

두번째는 기술과 마케팅에서 앞선 기업들이다.

뭐니뭐니해도 기술력은 기업 경쟁력을 결정짓는 최고의 요소다.

남들이 넘볼수 없는 기술을 갖고 있는 기업앞에 불황이란 단어는 없다.

삼성전자는 세계최고의 메모리반도체 기술을 앞세워 올해 작년보다 10%이상
늘어난 20조5천억원의 매출을 올릴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경상이익도 7천억원을 넘어설 것이란 전망이다.

특히 반도체 부문만 따지면 1조원에 가까운 흑자가 난다고 이 회사 관계자
는 말한다.

국내 초소형 PCS폰을 개발한 어필텔레콤, 차세대 워크맨인 MP3를 상품화한
새한정보시스템 등의 약진도 기술을 배경으로 한다.

한국타이어는 해외마케팅을 강화해 영업실적을 크게 향상시켰다.

세번째는 기초체력이다.

재무구조가 탄탄하거나 사업기반이 확고한 기업들은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화섬직물업체인 (주)성안은 현금성 자산 확보와 유상증자를 통해 지난
94년말 5백7%였던 부채비율을 3년만에 1백53%로 낮추었다.

다른 기업들이 은행 이자와 빚을 갚는데 허덕이는데 비해 이 회사는 요즘
순 이자수입을 올리고 있다.

순익이 늘어나지않으면 이상할 정도다.

남양유업은 아예 무차입 경영을 해 34년째 흑자기조를 이어가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조선 선박용엔진 발전설비 철구조물 등 각 부문의 안정된
사업기반을 토대로 올해 7조8천억원의 매출에 3천억원의 흑자를 낼 것으로
전망된다.

세계최고의 기술과 탄탄한 재무구조를 갖추고 있는 포항제철은 올해 사상
최대의 이익을 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 특별취재반 : 이희주 차장대우(팀장) 최완수 박주병 김정호 채자영
강현철 박기호 노혜령 이익원 권영설 윤성민 기자
(산업1부)
이치구 부장대우 노웅 차장 문병환 오광진 정한영
김용준 기자(산업2부)
정건수 차장대우 손희식 조정애 정종태 양준영 기자
(정보통신부)
김영규 김광현 기자(유통부)
장유택 정종호 기자(사회1부)
고두현 유재혁 기자(문화레저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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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영 패러다임의 변화 ]

<> 경영목표 : 매출증시(대마불사) -> 손익/현금흐름중시(현금불사)

<> 가치 : 형식중시 -> 실질중시

<> 시스템 : 한국식 -> 글로벌 스탠더드

<> 전략 : 다각화 -> 선택과 집중

<> 구조 : 계층구조 -> 네트워크화

<> 경쟁수준 : 국내경쟁 -> 글로벌경쟁

<> 스태프 수준 : 아마추어 -> 프로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2월 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