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개혁개방 20주년 .. '외자 1호점' 승승장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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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18일은 중국이 "죽의 장막"을 걷고 개혁개방을 선언한지 20주년 되는
날이다.
20년전 이날 중국 공산당은 제11기 중앙위원회 3차 전체회의를 열고 중국
현대화를 위한 대장정을 시작했다.
이 회의(78년)를 주도했던 덩샤오핑(등소평)은 지난해 2월 사망했다.
그러나 장쩌민(강택민)국가주석등 중국 고위지도자들은 덩의 업적을 기리는
데 인색하지 않다.
그들은 기회있을 때마다 개혁개방 이래 도입된 외자가 중국 경제발전의
밑거름이 됐다고 강조한다.
각 부문에서 외자를 들여와 세운 "외자 1호점"들은 여전히 성공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호텔=외국자본이 중국에 들어와 처음으로 세운 호텔은 베이징(북경)의
건국호텔이다.
이 호텔은 지난 79년 10월 문을 열었다.
거의 같은 시점에 장성호텔 경륜호텔 광조우(광주)중국대하호텔
백천아호텔 난징(남경)금릉호텔 등도 외자를 들여와 세우졌다.
<>합자기업=첫번째 합작기업은 홍콩 출신인 오숙청(여)씨가 세운
베이징항공식품유한공사.
오씨는 지난 80년 4월 중국 외국인투자기업 1호 허가서를 받고 전세계의
관심속에 영업을 시작했다.
현재도 큰 변화없이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경제특구=지난 80년 8월 중국 국무원이 결정한 선전(심천)경제특구가
그 첫 사례다.
그후 하이난(해남) 샤먼(하문) 주하이(주해) 등을 포함 모두 5개
경제특구가 세워졌다.
<>중외합작은행=개혁.개방 8년째인 지난 85년 중국과 외국이 합작해
설립한 샤먼국제은행이 첫 중외합작은행이다.
이 은행이 설립된 뒤부터 외자은행과 각종 금융관련 사무소가 중국에
세워졌다.
<>중외합자여행사=지난해 1월 세워진 화명국제여업유한회사가 중국과
외국이 공동으로 세운 첫 합자여행사다.
이 여행사는 선전시 유람그룹과 일본 명철관광주식회사
홍콩백승여운유한회사가 공동으로 설립했다.
<>외국정부 대출=지난 80년 4월 일본 정부가 처음으로 중국에 3천만달러
상당을 빌려줬다.
미국이나 유럽 금융기관들이 중국의 장래에 의문을 표시하고 있는 사이에
일본이 선수를 쳤다.
전례 없던 차관도입이어서 중국 외교부 부부장과 주중 일본대사가
대출문서에 서명하기도 햇다.
< 베이징=김영근 특파원 ked@mx.cei.gov.cn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2월 10일자 ).
날이다.
20년전 이날 중국 공산당은 제11기 중앙위원회 3차 전체회의를 열고 중국
현대화를 위한 대장정을 시작했다.
이 회의(78년)를 주도했던 덩샤오핑(등소평)은 지난해 2월 사망했다.
그러나 장쩌민(강택민)국가주석등 중국 고위지도자들은 덩의 업적을 기리는
데 인색하지 않다.
그들은 기회있을 때마다 개혁개방 이래 도입된 외자가 중국 경제발전의
밑거름이 됐다고 강조한다.
각 부문에서 외자를 들여와 세운 "외자 1호점"들은 여전히 성공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호텔=외국자본이 중국에 들어와 처음으로 세운 호텔은 베이징(북경)의
건국호텔이다.
이 호텔은 지난 79년 10월 문을 열었다.
거의 같은 시점에 장성호텔 경륜호텔 광조우(광주)중국대하호텔
백천아호텔 난징(남경)금릉호텔 등도 외자를 들여와 세우졌다.
<>합자기업=첫번째 합작기업은 홍콩 출신인 오숙청(여)씨가 세운
베이징항공식품유한공사.
오씨는 지난 80년 4월 중국 외국인투자기업 1호 허가서를 받고 전세계의
관심속에 영업을 시작했다.
현재도 큰 변화없이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경제특구=지난 80년 8월 중국 국무원이 결정한 선전(심천)경제특구가
그 첫 사례다.
그후 하이난(해남) 샤먼(하문) 주하이(주해) 등을 포함 모두 5개
경제특구가 세워졌다.
<>중외합작은행=개혁.개방 8년째인 지난 85년 중국과 외국이 합작해
설립한 샤먼국제은행이 첫 중외합작은행이다.
이 은행이 설립된 뒤부터 외자은행과 각종 금융관련 사무소가 중국에
세워졌다.
<>중외합자여행사=지난해 1월 세워진 화명국제여업유한회사가 중국과
외국이 공동으로 세운 첫 합자여행사다.
이 여행사는 선전시 유람그룹과 일본 명철관광주식회사
홍콩백승여운유한회사가 공동으로 설립했다.
<>외국정부 대출=지난 80년 4월 일본 정부가 처음으로 중국에 3천만달러
상당을 빌려줬다.
미국이나 유럽 금융기관들이 중국의 장래에 의문을 표시하고 있는 사이에
일본이 선수를 쳤다.
전례 없던 차관도입이어서 중국 외교부 부부장과 주중 일본대사가
대출문서에 서명하기도 햇다.
< 베이징=김영근 특파원 ked@mx.cei.gov.cn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2월 1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