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들은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수 있는 회사에서 일하길 원한다.

회사원 개개인이 최상의 능력을 발휘하면 그 회사는 절로 경쟁력을 갖추게
된다.

따라서 최고 경영자의 으뜸자질은 역시 모든 임직원이 마음껏 자신의 역량을
펼칠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 것이다.

휴렛팩커드가 지난 10월 발행된 포천지에서 세계 전체기업중 가장 존경받는
기업 6위를 기록할수 있었던 것도 임직원들이 편하게 일할수 있는 분위기가
높이 평가받은데 따른 것이다.

이 회사는 컴퓨터 및 주변기기, 전자측정 및 계측장비와 시스템 네트워크
제품, 전자의료장비, 화학분석기기, 계산기, 전자부품 등 2만9천여종의 첨단
정보통신제품을 생산판매하는 기업이다.

휴렛팩커드는 미국 캘리포니아 팔로알토의 실리콘밸리에 본사를 두고
있으며 세계 1백20여개국에 6백여개의 영업망을 보유하고 있다.

약 12만2천여명의 직원을 고용하고 있고, 이중 5만명 이상이 현지인인
글로벌 기업이다.

97년 4백29억달러의 매출을 기록해 컴퓨터와 사무기기 분야에서 IBM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39년 스탠퍼드대학 공대 동창생인 빌 휴렛(William R Hewlett)과 데이비드
팩커드(David Packard)는 자본금 5백38달러로 팔로알토의 작은 차고에
공장을 세웠다.

이 공장이 "실리콘밸리의 탄생지(Birthplace of Silicon Valley)"로 현재
세계각국으로부터 방문객들이 잇따르고 있다.

첫 생산 제품은 오디오 오시리에이터로 빌이 대학원시절 개발하여
특허등록한 제품이었다.

이렇게 세계 벤처 1호 기업인 휴렛팩커드는 탄생했다.

실리콘밸리의 시조인 이 회사가 반세기동안 실리콘밸리 매출1위를
고수한데는 나름의 비결이 있었다.

먼저 급속한 변화를 헤쳐나가기 위한 변신의 노력이 있었다.

휴렛팩커드는 생산 제품이 워낙 다양해 사업 전분야에 걸쳐 크고 작은
경쟁사와 끊임없이 경쟁해야 한다.

이런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선 과감하고 장기적인 변화를 꾀해야 했다.

이러한 변화의 시기에 "휴렛팩커드호"의 운명을 조타하는 역할을 맡은
사람이 바로 현재의 휴렛팩커드 회장인 류 플랫(Lewis E Platt)회장이다.

류 플랫 회장은 66년 휴렛팩커드에 입사한 이후 회사의 주요직을 두루
거쳤다.

92년 사장 및 CEO 로 임명된 후 93년에는 마침내 창업자인 데이비드
팩커드의 뒤를 이어 회장에 임명됐다.

플랫 회장은 뉴욕주 코넬대학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하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와튼경영대학원에서 경영학을 공부했다.

95년에는 클린턴정부의 통상정책협상 자문위원회의 고문으로 발탁돼 현재
이 위원회가 주관하는 세개의 프로젝트중 하나인 세계무역기구 특별팀
프로젝트의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취임이래 플랫 회장은 개인용 컴퓨터 산업을 중심으로 한 관련산업의
대대적인 변화를 내다보고 공격적인 마케팅 정책을 펼쳤다.

그 결과 91년 컴퓨터산업 시장점유율 21위에서 98년 3위로 뛰어 올랐다.

95년에는 텍사스 소재의 고성능 컴퓨팅솔루션 업체인 컨벡스사를 인수했고
인텔사와 차세대 컴퓨터 칩을 공동 개발키로 제휴하는 등 전략적 제휴 및
인수로 사업영역을 급속히 넓혀갔다.

최근에는 전자상거래 분야에 진출하기 위해 전자지불 시스템 분야의
선두업체인 베리폰(VeriFone)을 1백30억달러에 인수했고 디지털 카메라
포토 스캐너와 포토프린터를 선보였다.

4백억달러 규모의 포토그래픽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연구개발투자를
강화하는 등 사업부문 다각화에 힘썼다.

이렇게 산업전반에 걸친 변화에 대응하여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자세로
새로운 가능성을 개척하는 플랫 회장의 경영능력은 산업계에 상당한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최근에 벌어진 신규사업 진출 및 전략적 제휴, 인수 등에서 보여지는 플랫
회장의 공격적인 이미지와는 반대로 플랫 회장은 일명 컴퓨터산업의
"보이스카웃"이라고 불릴 정도로 조용한 소년단장의 이미지를 지니고 있다.

(이 별명은 경쟁사를 헐뜯지 않는 등 신사적인 사업활동이 보이스카웃의
정신과 유사하다는 데서 얻은 별명이다.)

플랫 회장의 소년단장과 같은 이미지와 격식없는 성품은 사내활동에서도
잘 나타난다.

먼저 그의 집무실은 누구든지 쉽게 방문할 수 있도록 출입문과 칸막이를
없앴다.

따라서 누구라도 회장이 근무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더욱이 그의 집무실은 여느 회장실과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평범하다.

다음으로 그는 직원들과 함께 직원식당에서 먹고 얘기하며, 쉬는 시간에는
다른 흡연자들과 똑같이 건물 밖에서 서성인다.

마지막으로 손수 자동차를 운전하며 경영대학원 출신 신입사원들에게
현장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더 배우라고 충고한다.

그는 또한 소수인종과 여성에게 일할 기회를 줄 수 있는 인사.채용정책을
펼치고 있으며 행복한 가정을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인식하여 회사를 집처럼
여길 수 있도록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다.

휴렛팩커드에서는 각자가 근무시간대를 정할 수 있으며 직원들이 직장과
가정에서 건강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각종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이러한 플랫 회장과 전직원의 노력의 결과로 92년이래 평균 매출성장률과
순이익성장률이 각각 21%와 29%를 기록했다.

1인당 매출규모가 꾸준히 성정세를 타는 등 생산성 측면에서도 괄목할
만한 발전이 있었다.

이처럼 최고경영자의 성공뒤에는 그를 믿고 따르는 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헌신이 있게 마련이다.

류 플랫 회장도 휴렛팩커드의 성공이 임직원 모두의 노력덕분이라고
여기고 있다.

그는 신입사원을 채용할 때 진실성을 최우선으로 본다고 하며 성공의
영광을 혼자 차지하지 않고 남들과 나누는 사람을 채용하겠다고
표명하고 있다.

< 손위용 AT커니 컨설턴트 seoul-opinion@atkearney.com
이익원 기자 iklee@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2월 1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