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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에 동양화가인 K화백의 초청을 받아 그분 집에서 저녁식사를 한 적이
있다.

나 역시 그림에 관심이 많은 터라 대가의 초청을 받아 식사를 한다는 것은
더할수 없는 기쁨이었다.

담소를 나누면서 몇가지 놀랐던 기억이 있다.

화가의 손은 무척 고울 것이라는 내 생각과는 달리 그분의 손은 목수의
손 처럼 투박했다.

단순히 그림만 그리는게 아니라 손수 대패질을 해 액자를 짜고 궂은 일을
도맡아 하다보니 손이 거칠어졌다는 설명이었다.

또 하나 놀란 것은 자기 형님의 도움을 받아가며 살 정도로 생활이 매우
어려웠다는 점이었다.

더더욱 놀란 것은 그런 어려운 환경에서도 얼굴이 마치 순진무구한 아이처럼
해맑았다.

그분은 먹고 사는 문제에는 아랑곳하지 않은채 오로지 예술에 파묻혀 기쁨을
찾고 있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결과물인 그림이 어떻게 나올 것인지에 대한 생각마저도
접어둔채 오로지 온몸을 던져 창작을 하고 그 과정에서 희열을 느끼는 것
같았다.

K화백의 기억을 되살리는 것은 요즘의 벤처기업인들과 대조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일부 기업인에 국한된 것이긴 하지만 과정은 무시한채 결과에 너무
조급해 한다.

IMF사태 전에는 창업한지 얼마 안된 젊은 벤처기업인들이 창업투자회사를
찾아가 주식 액면가의 10~30배의 프리미엄을 요구하며 투자를 요청하는
일마저 있었다.

아직 사업이 궤도에 오르지 않았는데도 기술과 학벌을 자산으로 삼아 열매를
먼저 따먹으려 하는 것이다.

목표는 오직 열매뿐이고 정작 사업은 연습으로 여기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사업은 결코 하루 이틀이나 한두해에 승부가 나는게 아니다.

때로는 10년 20년 심지어 평생을 바쳐도 열매가 나올까말까 한다.

열매에만 매달려서는 뿌리나 줄기를 튼튼히 할수 없다.

사업가는 열매보다는 연구개발과 인재양성처럼 뿌리를 가꾸는 일에서 기쁨과
보람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열매는 결코 사람의 힘으로 맺게 할수 없는, 신의 소관사항이기 때문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2월 1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