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구제금융 이후 1년이 지나면서 지방경제에도 커다란 변화가 생겼다.

지역의 기둥급인 대기업들이 속속 부도를 내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가
하면 차제에 과감한 구조조정으로 기업체질 강화에 나선 기업도 적지 않다.

이에 따라 대부분 지역에는 아직껏 깊은 불황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으나
일부공단 등에서는 경기회복 조짐이 뚜렷해지고 있어 "IMF 터널"을 빠져
나온게 아니냐는 때이른 기대마저 불러 일으키고 있다.

다만 삼성자동차와 대우전자의 빅딜이 새로운 돌출 변수로 등장, 지역별로
명암이 엇갈릴 가능성은 있다.

IMF 1년을 맞아 권역별 경기를 점검하고 대책 등을 모색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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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

부산경제의 어려움은 어음부도율 정상가동률 등 각종 경제지표가 잘 말해
준다.

지난해말 이래 지난 10월말까지 쓰러진 기업만도 2천8백13개곳.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배 가까운 수치다.

특히 부산지역 매출상위 50대기업중 18곳이 경영악화를 견디지 못해 부도를
내거나 공장을 팔았다.

부산의 대표적인 간판기업들이었던 대선주조 자유건설 기린 해강과 부산의
유일한 대기업이었던 화승마저...

경기불안은 내수를 극도로 얼어붙게 하면서 제조업의 정상조업률마저 최악
으로 몰아붙이고 있다.

지난해 11월 82.7%였던 정상조업률이 지난 10월 60.3%를 기록, 80년 통계
작성 이후 최저치를 보였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무려 23%포인트나 떨어진 것이다.

부산상의에 따르면 이곳 중견업체들의 65% 이상이 내수부진으로 극심한
경영압박을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산상의 윤중걸 사무국장은 이처럼 부산경제가 악화일로를 걷는데 대해
"중견기업의 부도와 금융기관의 퇴출이 서로 맞물려 발생하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신평장림공단 조용국 이사장도 "지난해 12월 기업어음할인을 통해 단기
자금 조달창구 역할을 해왔던 항도 한솔 고려 신세계 등 부산지역 4개
종금사가 한꺼번에 문을 닫는 바람에 부산경제의 어려움은 극에 달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나마 지난달부터는 약간 회복세를 보이는 듯 했다.

하지만 삼성자동차 문제가 암초로 등장해 당초 자동차산업을 중심으로
제조업 구조조정을 추진하려던 지역경제는 또 다시 충격에 휩싸이고 있다.

2천3백여 부품업체들이 도산할 지경이고 연간 4조8천억원 이상의 지역경제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이에 따라 더 이상 몰락의 길로 접어들기 전에 금융과 기존 유망산업을
주축으로 경제 체질강화 작업을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부산발전연구원 원희연 선임연구원은 "지역에선 그나마 벤처 조선 항만
섬유산업이 나름대로 경쟁력을 갖추고 IMF를 헤쳐 나가고 있다"며 이 산업을
주축으로 지역경제 회복에 나설 것을 제안했다.

<> 울산

울산지역은 지난 9~10월부터 경기가 극저점을 치면서 조금씩 살아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지난달까지만해도 울산의 최대 주력업종인 자동차산업은 판매대수가
67만4천대로 전년 대비 35%나 급감, 어두운 전망을 던졌다.

연간 10%이상 성장세를 보였던 석유화학의 생산량도 1.4% 감소했다.

다행스럽게도 지난 9~10월부터 제조업가동률이 6~12%포인트 이상 회복되고
부도율도 10월 들어 큰 폭으로 떨어지고 있다.

울산상의 이웅걸 부장은 "최근 경기가 바닥을 치면서 자동차 석유화학을
중심으로 조금씩 회복돼 가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며 "이같은 상황이 지속
되면 내년 상반기에는 안정세에 돌입할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전망했다.

이와 관련, 장기적으로는 어떤 불황에도 견딜 수 있게끔 경제체질을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울산상의 고원준 회장은 "중소기업도 이젠 대기업 납품에만 의존하지 말고
기술개발을 통한 수출에 진력해야 할 것"이라며 "이와 함께 신소재개발과
산업기술연구단지 개장 등을 통해 기존산업도 고도화시켜야 한다"고 강조
했다.

<> 경남

지난 10월까지만해도 공단내 44개사가 부도를 내고 쓰러졌다.

종래 한해에 2~3업체에 불과했던 점과 비교하면 엄청난 것이다.

조업률도 59.8%로 올해 최저치를 보였다.

제조업 빅딜로 중소업체의 생산량이 20% 이상 줄어들어 경기회복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섞인 목소리도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창원지역은 최근 수출이 업체별로 눈에 띄게 늘고 있고 타지역
업체들보다 기술력이 뛰어난 구조를 갖추고 있어 경기전망은 대체적으로
낙관적이다.

경남도 이주현 지역경제과장은 "창원지역은 산업기반이 튼튼한 기계
조립금속 전자업종이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만큼 대기업 중심으로
안정을 찾아가면서 빠른 경기회복 조짐을 보이고 있다"고 진단했다.

특히 한국산업단지공단 황철곤 동남지역본부장은 "IMF 내성이 생긴 중견
업체들이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며 "메카트로닉스 첨단지식산업쪽으로
지속적인 산업구조개편을 해간다면 내년 상반기쯤에는 안정된 경제회복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 부산=김태현 기자 hyun11@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2월 1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