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근 < 코리아하트카드(주) 사장 >

오랜 세월 은행은 믿음의 상징이었다.

은행업에 종사하는 사람 또한 동경의 대상이었다.

그런데 이 시대에서는 그렇지가 않다.

은행 부실의 엄청난 숫자에 모두가 경악하고 있다.

공식집계에서는 은행의 부실액이 1백39조원, 그 중 요주의 여신액이 포함돼
있긴 하다.

은행 부실이 곧 국민부담으로 전가되리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이 시점에서 은행 구조조정은 일단락되는 것으로 전해진다.

10개은행이 퇴출 또는 합병(예정 포함)으로 옛 모습을 찾을 수 없게 됐다.

퇴출 합병 정부출자, 그리고 은행원의 감축, 이것이 구조조정의 수순이었다.

그러나 대표적 부실은행인 제일.서울은행은 부실액만 누적시켜가고 있다.

이로써 방만했던 은행경영이 바로 잡히고 은행병폐가 치유되리라고 믿어도
되는가.

그 의문은 바로 은행 종사자들의 타성적 의식이 구조조정 과정에서 방치되고
있기 때문이다.

제조산업은 설비 원료, 그리고 기술이 복합돼 우수제품이 만들어지고 경쟁
력을 겸비해 시장을 장악한다.

그러나 은행업은 그렇지가 않다.

전부라고 할만큼 사람의 능력으로 경영이 좌우되는 산업이다.

이번에 은행이 타성적 구조를 바꿔보려는 흔적은 엿볼 수 있었다.

경영진에 외국인 또는 외부인사 한두사람을 끼워 넣고 있다.

이사회 제도를 바꾸고 여신의 전횡을 막는 장치를 마련했다고 해서 부실
여신이 추방되고 은행모습이 예전과 달라지리라 기대할 수 있을까.

그동안에는 법과 규정, 관행이 거의 은행사람들 편의로 운영돼왔다.

은행을 드나드는 숱한 고객의 입장에서 보면 상당부분 법규적용의 잣대는
상대에 따라 다르고 따라서 은행은 기능에 한계를 지녀왔다고 본다.

부실 파생규모가 이를 입증해준다.

은행은 힘없는 계층에는 강력한 힘을 발휘해 왔다.

철저히 전당포식의 대출관행으로 법규를 지켜왔다.

그러나 대기업 재벌그룹에는 매우 관대할 뿐이었다.

은행돈으로 사업확장에 열을 올렸던 그들 입장에 함께 춤을 추어온 측면은
허다했다.

은행이란 철저한 기업분석과 산업추이를 판단하고 국내외 경쟁력과 산업의
장래까지를 가늠하는 책임과 의무가 있는 곳이다.

오늘에 이르러보면 은행부실의 현장은 그렇지 못했던 것이다.

이를 놓고 그들 은행사람들은 외압 탓으로 돌린다.

그러나 은행 부실을 만들어낸 근저에는 바로 변할줄 모르는 타성의 은행
의식이 큰 몫을 차지한다고 봐야한다.

은행이라는 곳은 이른바 텃세가 심한 곳으로 오래전부터 알려져 왔다.

그러면서도 대부분의 은행사람들은 주인의식을 갖지 못하고 정상경영의
본질을 스스로 희석시켜 왔다.

이는 특히 은행의 거래고객 사이에서 구전돼온 공론이다.

구조조정의 격랑을 한바탕 겪고 다시 태어나는 은행을 이끌고 갈 사람들은
옛 은행을 이끌어온 그 사람들이다.

금융업사상 처음있는 구조조정으로 은행업이 새 틀을 만들었다고 하자.

타성과 관행에 익숙한 그 은행사람들이 변화의 계기를 갖지 못하면 과연
얼마나 달라진 사고로 업무에 임할 수 있을까.

그래서 은행 구조조정 과정에서 은행원 전수교육 프로그램 등으로 재충전의
전제가 소망스러웠다는 지적이 나온다.

새로운 시대에 적응할 의식의 변화가 근간이 돼 신선한 은행문화가 재형성
돼야 한다.

이로써 구조조정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다.

은행의 경영진, 은행원이 전례대로 속성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오늘의
부실을 감내하는 국민들의 희생은 무가치해지는 것이다.

은행은 단순 반복적인 업무로 지새는 곳이다.

오랜 세월을 은행원 생활로 일관하다 보면 자신들도 모르게 사고는 굳어지고
세상을 보는 감각마저 둔탁해질 수 있다.

최근 조건부 생존승인을 받고 있는 일부 은행이 감축된 은행원 중 무려
85%를 재고용하여 도덕적으로도 지탄받은 일이 있었다.

은행사람들의 변하지 않는 속성을 그대로 드러낸 한 단면이다.

이 시점에서는 국제결제은행의 자기자본 비율 등 표면상의 기준만 맞춰가고
있을 뿐, 질적 기능 회복에는 아직도 먼 거리에 있는 게 오늘의 금융업을
보는 견해다.

필연적으로 은행사람들이 달라져야 부실이 배제되고 거래고객이 편안해진다.

신선한 은행으로 거듭 태어날 수 있다.

이는 은행사람들 스스로 다져가야 할 과제이고 의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2월 1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