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거일 < 경제평론가. 소설가 >

"아시아적 가치"에 관한 논쟁이 뜻밖에 질긴 목숨을 보여주고 있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에서 김대중 대통령이 마하티르 모하메드
말레이시아 대통령과 벌인 논쟁은 그 점을 잘 보여준다.

아시아적 가치를 높이고 국제 자본을 통제해야 한다는 마하티르 대통령의
주장에 대해 김 대통령은 자유민주주의와 자유무역을 강조했다.

아시아적 가치에 관한 논쟁은 본질적으로 가치가 보편적이냐 아니냐를
따지는 일이다.

이것이 아시아적 가치에 관한 논쟁이 그리도 큰 관심을 끌었고 끈질긴
목숨을 지니게 된 근본적 요인들 가운데 하나다.

사람의 특질 가운데 가장 근본적인 것은 사람이 생명체라는 점이다.

그것은 다른 모든 특질을 압도한다.

그리고 생명체로서의 사람들 사이의 차이는 거의 없다.

그리고 인종이나 민족 사이의 차이는 개인 사이의 차이보다 오히려 작다.

자연히 사람의 욕망과 본능은 개인적 또는 인종적 차이가 없다.

가치는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는 데 이로운 무엇이다.

따라서 그것은 본질적으로 사람의 욕망과 본능에 바탕을 둔다.

이렇게 보면 가치는 실질적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같다.

곧 가치는 보편적이다.

가치는 현실에선 풍속으로 구체화된다.

사회마다 환경과 역사가 다르므로 그렇게 풍속으로 구체화된 가치는 다른
모습들을 하게 된다.

아시아적 가치도 실은 보편적 가치가 아시아 여러 나라들에서 구체화되면서
나온 모습들이다.

이 말을 처음 쓴 사람들이 그것으로 가리킨 것들이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구체적 풍속이었던 것은 바로 이런 사정 때문이다.

따라서 아시아적 가치를 주장한 사람들은 별다른 근거없이 아시아 사회를
다른 사회와 변별하고 높인 셈이다.

이것은 우리가 흔히 우리나라를 예의지국이라고 자랑하는 것과 성격이 같다.

잠시만 생각해보아도 이 관행은 결코 좋은 것이 아님이 드러난다.

조선말기의 훌륭한 정치가로 서양에 대한 식견이 뛰어났던 박규수(1807~
1876)는 "즐겨 예의의 나라라고 일컫는 것을 나는 본래부터 천히 여긴다.

천하 만고에 나라를 이루고서 예의 없는 곳이 있겠는가"

정곡을 찌른 말이다.

그는 그래서 "이는 중국 사람들이 둘레의 야만인들 가운데서 예의바른 자를
칭찬하여 예의의 나라라고 한 것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원래 부끄럽게 여길
말이요, 스스로 천하에 호언할 것이 못된다"고 말했다.

그가 지적한 사정을 고려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우리가 예의의 나라임을
내세우는 것은 그릇된 판단에 바탕을 둔 오만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게 그릇된 판단에 바탕을 둔 태도가 좋은 결과를 낳을 수는 없다.

1880년 김홍집이 수신사로 일본에 갔을 때의 일이다.

그가 일본 외상 이노우에 가오루와 얘기하다가 "우리나라는 예부터 풍습이
예의를 숭상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이노우에는 "귀국이 본래부터 예의와 충신을 숭상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천하의 나라들 가운데 어느나라에 오상이 없겠습니까"라고 대꾸했다.

그 뒤로 김홍집은 "예의의 나라"라는 말을 쓰지 않았다.

이 일화는 근거없는 오만의 위험을 잘 보여준다.

보편 대신 특수를 고집스럽게 내세우는 것은 흔히 사실에 대한 무지와
철저하지 못한 분석에서 나온다.

그리고 드물지 않게 자기 이익의 추구이기도 하다.

이번에 아시아적 가치를 주창한 싱가포르의 리콴유나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가 권위주의적 정치가들이었다는 사실은 우리가 이 문제를 다룰 때
꼭 고려해야 할 사항이다.

세계화의 진전에 따라 보편적 가치와 특수적 풍속 사이의 긴장과 충돌은
계속 나올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특수한 풍속 속에 든 보편적 가치를 살피려는 노력
이다.

그것은 우리가 풍속을 가치로 여길 위험을 줄여주고 풍속이 우리와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2월 1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