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모과향 같은 정 .. 김수중 <인수준비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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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중 < 현대자동차 기아차 인수준비위원장 >
우리 집 마당에는 여러 해 묵은 모과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모과나무치고는 미끈하게 잘 생기고 위로 뻗은 가지들이 서로 엉켜, 마치
다복한 가족처럼 정다워 보인다.
계절마다 바뀌는 그 모과나무의 은근한 변화 또는 참으로 귀한 볼거리다.
봄에는 덩치에 비해 수줍게 잎이 돋고 오월이 되어 철쭉꽃이 만발할 즈음에
연적게 연분홍 꽃이 봉곳하게 핀다.
그리곤 어느날 엄지만한 토란형 열매가 잎 속에 숨어있는가 싶다가, 가을이
되면 그 모습이 시시각각 달라져 주먹만한 모과덩이를 황금색으로 익혀가는
것이다.
그 울퉁불퉁하고 못생긴 모과를 툭 건드리기만 하면 붙들고 있던 가지를
어이없이 놓아 버린다.
마치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과일 망신은 모과가 시킨다"는 말이 있다.
모과를 보면 한 입 덥석 베어물고 싶은 충동이 일지만 그 단단한 속살하며
시고 텁텁한 맛이란 가히 과일 망신감이다.
그러나 모과의 향만큼은 가히 일품이 아닌가.
오래도록 은은하게 향을 풍기는 모과는, 그저 잠시 입맛거리로나 존재하는
그런 과일과는 달리 잠시만 손에 쥐고 있어도 손바닥 깊숙이 향을 배이게
하는 정이 깊은 나무다.
우리는 "정이 든다"는 표현을 흔히 쓴다.
하지만 굳이 실속을 따지고 이해를 가린다면 어떻게 참된 "정 들기"를
할 수 있으랴.
모과나무는 어떤가.
향이 농짙게 풍길 즈음 추위는 어김없이 찾아고고 찬 바람이 "휙"하고
모과나무를 스치면 모과들이 "쿵"하고 땅으로 내려앉는다.
마치 아무 사심없이 모든이와 "정 들고자" 하는 듯이.
겨울은 정이 그리운 계절이다.
그래서 불우한 이웃들을 생각하기도 하고, 양로원이나 고아원을 찾기도
한다.
전화 한 통화로 불우이웃을 돕는 텔레비젼 프로그램에서 쉴 새 없이
통화 숫자가 올라가는 것을 보면 과연 우리 민족은 정이 많은 민족임에
틀림없다.
세찬 바람과 함께 온 세상이 얼어붙는 이 겨울에 주위를 이겨내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불우이웃을 생각하는 마음과 이를 실천하는 것이라 믿는다.
언제나 모과향처럼 은근한, 모과나무처럼 아낌없는 정만 있다면 겨울의
강추위가 아니라 IMF 한파도 쉽게 녹일수 있을 것이다.
따뜻한 차 한잔이 사람의 마음을 훈훈하게 하듯, 그저 만지기만 해도
손끝가득 향이 배이는 모과향처럼 온 목에 따뜻한 목도리를 둘러주는 듯한
아름답고 따뜻한 이야기가 가득찬 올 겨울이면 좋겠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2월 15일자 ).
우리 집 마당에는 여러 해 묵은 모과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모과나무치고는 미끈하게 잘 생기고 위로 뻗은 가지들이 서로 엉켜, 마치
다복한 가족처럼 정다워 보인다.
계절마다 바뀌는 그 모과나무의 은근한 변화 또는 참으로 귀한 볼거리다.
봄에는 덩치에 비해 수줍게 잎이 돋고 오월이 되어 철쭉꽃이 만발할 즈음에
연적게 연분홍 꽃이 봉곳하게 핀다.
그리곤 어느날 엄지만한 토란형 열매가 잎 속에 숨어있는가 싶다가, 가을이
되면 그 모습이 시시각각 달라져 주먹만한 모과덩이를 황금색으로 익혀가는
것이다.
그 울퉁불퉁하고 못생긴 모과를 툭 건드리기만 하면 붙들고 있던 가지를
어이없이 놓아 버린다.
마치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과일 망신은 모과가 시킨다"는 말이 있다.
모과를 보면 한 입 덥석 베어물고 싶은 충동이 일지만 그 단단한 속살하며
시고 텁텁한 맛이란 가히 과일 망신감이다.
그러나 모과의 향만큼은 가히 일품이 아닌가.
오래도록 은은하게 향을 풍기는 모과는, 그저 잠시 입맛거리로나 존재하는
그런 과일과는 달리 잠시만 손에 쥐고 있어도 손바닥 깊숙이 향을 배이게
하는 정이 깊은 나무다.
우리는 "정이 든다"는 표현을 흔히 쓴다.
하지만 굳이 실속을 따지고 이해를 가린다면 어떻게 참된 "정 들기"를
할 수 있으랴.
모과나무는 어떤가.
향이 농짙게 풍길 즈음 추위는 어김없이 찾아고고 찬 바람이 "휙"하고
모과나무를 스치면 모과들이 "쿵"하고 땅으로 내려앉는다.
마치 아무 사심없이 모든이와 "정 들고자" 하는 듯이.
겨울은 정이 그리운 계절이다.
그래서 불우한 이웃들을 생각하기도 하고, 양로원이나 고아원을 찾기도
한다.
전화 한 통화로 불우이웃을 돕는 텔레비젼 프로그램에서 쉴 새 없이
통화 숫자가 올라가는 것을 보면 과연 우리 민족은 정이 많은 민족임에
틀림없다.
세찬 바람과 함께 온 세상이 얼어붙는 이 겨울에 주위를 이겨내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불우이웃을 생각하는 마음과 이를 실천하는 것이라 믿는다.
언제나 모과향처럼 은근한, 모과나무처럼 아낌없는 정만 있다면 겨울의
강추위가 아니라 IMF 한파도 쉽게 녹일수 있을 것이다.
따뜻한 차 한잔이 사람의 마음을 훈훈하게 하듯, 그저 만지기만 해도
손끝가득 향이 배이는 모과향처럼 온 목에 따뜻한 목도리를 둘러주는 듯한
아름답고 따뜻한 이야기가 가득찬 올 겨울이면 좋겠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2월 1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