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체제이후 문화 수요공급 패턴이 바뀌면서 "언더그라운드 문화"가
문화지도의 한 켠을 빠른 속도로 메워가고 있다.

지하 어두운 곳에서 일부 마니아들끼리 즐기던 문화가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급속히 저변을 넓혀가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언더그라운드 밴드들의 활약이다.

서울 홍익대 주변 소규모 라이브 클럽에서 주로 연주를 해온 언더 밴드들은
올들어 음반을 앞다퉈 내놓으며 지상으로 당당히 올라 섰다.

펑크 얼터너티브록 모던록 등 자유롭고 실험성이 강한 음악을 주로 연주하는
이들 밴드는 10~20대 젊은층에게 일종의 "해방구"역할을 하며 큰 인기를
모으고 있다.

"크라잉 너트" "황신혜 밴드" "허벅지 밴드" 등은 이미 일반인들의 귀에도
익숙한 이름이 됐다.

"크라잉 너트"의 히트곡 "말 달리자"는 공중파 TV와 라디오에까지 진출했다.

언더 밴드의 움직임이 활발하게 된 데에는 독립음반 제작사들이 큰 몫을
했다.

언더 밴드 앨범의 효시는 지난 96년 클럽 "드럭"이 내놓은 "아우어네이션1".

이후 독립음반사는 "인디" "강아지 문화예술기획" "라디오" "캬바레"
"재머스" "하드코어" 등 7개로 늘었다.

이들은 7백만원~1천5백만원 정도의 저예산으로 앨범을 만들어 내면서
언더 밴드의 대중화 작업을 이끌어가고 있다.

지금까지 제작된 독립음반사들의 음반 40여장가운데 대부분은 올해 시장에
나왔다.

15장의 음반을 제작한 "인디"의 공동대표인 김중휘씨는 "98년은 언더 밴드가
수면위로 부상한 원년으로 기록될만 하다"면서 "아직은 전체 음반 시장에서
차지하는 규모가 1%를 겨우 넘는 미미한 수준이지만 앞으로 성장 가능성이
큰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인디"는 전국 2백여 음반 소매점에 언더 밴드들의 앨범만을 모아 전시하는
코너를 설치, 독자적인 유통망을 구축하고 본격적인 영업을 펼치고 있다.

언더그라운드 만화인들의 움직임도 활발해지고 있다.

"히스테리" "바나나" 등 만화 잡지들이 속속 등장하고 인터넷을 통해
"네오코믹" 등 새로운 유형의 잡지도 선을 보였다.

사회 부조리와 현대인의 심리 상태 등을 적나라하게 묘사하는 등 기존 주류
만화와 차별되는 내용으로 팬들을 확보해 가고 있다.

지난 7월에는 신일섭 오영진 이경석씨 등 언더그라운드 작가들이 "잔혹"을
주제로 한 "언더그라운드 만화페스티벌"을 서울 종로구 사간동 금호미술관
에서 열어 화제를 모았다.

동성애자들을 위한 최초의 월간지 "버디"의 출현도 같은 맥락이다.

동성애자 10여명이 뜻을 모아 지난 3월 창간한 "버디"는 12월호까지 매달
거르지 않고 서점 진열대를 지켜왔다.

"버디" 관계자는 "처음에는 몇천부만 찍었지만 독자수가 꾸준히 늘어
최근에는 발행 부수가 1만부를 넘었다"고 말했다.

지난 11월 6일부터 9일동안 서울 아트선재센터에서 국내에서 처음으로 열린
동성애 영화제(제1회 서울퀴어영화제)에는 모두 6천5백여명이 다녀갔을 정도
로 성황을 이뤘다.

80여편의 동성애 관련 영화가 상영된 이 행사는 객석 점유율도 평균 80%를
웃돌았다.

대중문화 관계자들은 "다양성과 실험성이 강한 언더그라운드 문화는
주류 문화의 자양분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면서 "비주류의 성장은
전체 문화 발전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이들은 "언더그라운드 문화가 처음부터 거품없이 척박한 땅에서 자라왔기
때문에 IMF한파에도 불구하고 더욱 세력을 키워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 박해영 기자 bono@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2월 1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