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보은군 산외면 백석리 산골에서 난재배를 하고 있는 파란농원 김혁제
사장.

김 사장은 대학에서 조교생활을 그만두고 농삿일로 직업을 바꾼 청년
전업농이다.

김 사장은 대학졸업후 연구실에서 매년 똑같은 일을 7년째 하다보니 뭔가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싶다는 생각에 농촌으로 귀향하기로 작정했다.

도시생활에 젖은 아내설득이 가장 큰 걱정이었다.

아내인 이현섭씨도 "시골에서 흙을 만지며 땀을 흘리겠느냐"는 남편의 제의
에 별 반대없이 따랐다.

이렇게해서 IMF 직전에 고향인 보은으로 내려와 부모님의 땅에 비닐하우스를
세웠다.

퇴직금 등 사재 4천만원과 농어촌구조개선자금 및 농어민후계자지원금
8천5백만원 등 모두 1억2천5백만원을 투입했다.

농어민후계자로 인정받아 자금지원을 그런대로 쉽게 받을 수 있었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한눈팔지 않고 난을 키웠다.

그러나 곧바로 불어닥친 IMF한파는 김 사장에게 엄청난 시련으로 닥쳤다.

기름값과 전기료가 급등하면서 비닐하우스 난방비가 곱절이상 들었다.

난은 실내온도를 35도이상 유지해야 성장하기 때문에 난방을 계속해야했다.

이 때문에 자금이 예상보다 빨리 동났다.

수입이 전혀없어 생활비 마련이 여간 어려운게 아니었다.

김 사장은 "쪼들리는 생활 때문에 텃밭에 고추와 무 등을 심었으나 경험부족
으로 파종량의 절반도 건지지 못했다"고 말했다.

게다가 돌발적인 자연재해는 김 사장을 더욱 힘들게 만들었다.

올초엔 비닐하우스 문을 한쪽만 열어놨다가 돌풍으로 비닐이 날려 찢겨지는
바람에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

이같은 피해를 3번씩이나 당한 후 양쪽문을 열던가 모두 닫아야 한다는
이치를 깨달았다.

경험부족에서 온 결과였다.

"당시 아내가 만삭의 몸으로 비닐을 씌우는 바람에 그 후유증으로 태어난
쌍둥이가 인큐베이터 신세를 져야했습니다"

김씨는 당시를 회상하며 눈물을 글썽였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번개로 콘트롤박스가 고장나 저온피해를 입기도 했다.

도시와 멀리 떨어져있어 아프터서비스를 받기가 여간 어려운게 아니었다.

또 수해로 비닐하우스에 물이 차 난을 절반이상 폐기처분하기도 했다.

어려움 속에서도 김 사장은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비닐하우스에서 살다시피
했다.

난도 무럭무럭 자랐다.

이달초 처음으로 농장에 중간묘 3백만원어치를 내다팔았다.

본격 출하되는 내년 3월께면 상당한 수입도 기대되고 있다.

대학에서 원예학을 전공하고 연구실에서 화훼재배 관련 업무를 한 것이
상당한 도움이 됐다.

김 사장은 예비귀농가들에게 "흙은 부지런한 사람을 결코 외면하지 않는다"
며 "자식을 키우는 심정으로 정성을 기울여야한다"고 충고한다.

김 사장은 하우스에서 뿜어내는 열기만큼 성공에 대한 뜨거운 집념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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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은=이계주 기자 leerun@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2월 1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