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대 대기업그룹과 채권금융단간의 재무약정 체결은 우리 기업발달사에
한 획을 그을 만큼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절차상 채권금융기관과 돈을
빌려 쓴 기업간의 신사협정에 불과하지만 사실상 그동안 정부와 재계가
논란을 벌였던 대기업 구조조정의 방향과 실천계획을 마무리하는 완결판인데
다 그 내용도 과거의 대기업 경영관행에 일대 혁신을 요구하는 과제들이
많이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합의된 약정내용은 내년말까지 부채비율을 2백%이내로 낮추고, 오는
오는 2000년까지 계열기업수를 2백71개에서 1백36개로 줄이는 한편 계열
기업간 지급보증을 연말까지 완전 해소한다는 것이 큰 줄거리다.

그동안의 논란과정을 보면 이같은 내용은 기업입장에서 감내하기 힘든
벅찬 과제가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재무약정을 수용한 기업들의 결단과
각오는 높이 평가받아야 마땅하다. 아울러 기왕에 합의된 내용인 만큼 차질
없이 실행되기를 기대한다.

다만 우리는 합의안을 실천에 옮기는데 기업의 자구노력이 절대적이라고
생각하지만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과 금융기관들의 협조가 함께 이뤄져야만
달성 가능한 목표라는 점을 우선 지적하고 싶다. 구조조정에 대한 금융세제
지원을 강화하는 등 유인시책을 좀더 광범하게 강구하는 등 효과적인 추진
방법과 수단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다.

또 기업의 자율추진 원칙을 재삼 확인할 필요가 있다. 기업활동은 스스로
판단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고설령 결과가 좋지못하다 하더라도 시장경쟁을
통해 교정되도록 하는 것이 시장경제의 원리다. 정부에 금융감독권한이 있고,
따라서 금융기관을 통해 기업활동에 간여할 수 있다는 논리는 과거의
관치금융이나 정부주도 경제의 옹호론과 다를게 없다. 정부의 감독기능은
힘이 아니라 법과 제도로 이뤄져야한다.

특히 정부의 설명대로 재무약정 이행을 통해 대기업집단의 재무구조가
획기적으로 개선되고, 종래의 선단식경영에서 탈피할 수 있게 됐다면 갖가지
형태로 존재하는 대기업집단에 대한 차별적 규제는 더 이상 의미가 없다.
조속한 정비가 필수적이다.

금융기관의 구조조정을 신속히 마무리 하고 신용질서를 회복하는 일이
급선무다. 재무약정이 금융기관의 기업 후견인역할을 규정한 것으로 본다면
금융기관 스스로의 자질향상과 능력제고가 오히려 더 화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사실 우리의 기업여건을 감안한다면 재무약정에 제시된 목표들을 차질없이
달성하기란 쉽지않다고 생각한다. 예컨대 2년동안 2백억달러가 넘는 외자를
유치하는 것이나 45조가 넘는 자기자본을 확충하는 것 등은 기업 혼자의
힘만으로는 역부족이다. 오히려 정부의 국제경쟁력 강화와 국내경기 진작이
더 현실적인 대책이 될 수 있다. 구조조정의 윤곽이 잡힌만큼 이제는 정부가
생산주체인 기업의욕을 북돋워 줄 차례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2월 1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