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신장에 평생바쳐 .. '타계한 이태영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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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타계한 이태영 여사는 여성의 권리신장과 민권확립, 민주화 등에
평생을 몸바치면서 흔들림 없는 여성계의 대모로 추앙받아왔다.
첫돌을 지나자마자 부친을 여읜 이 여사는 어머니 김흥원 여사의 가르침
아래 성장, 평양 정의고녀를 거쳐 36년 이화여전 가사과를 졸업했다.
그해 미국에서 막 귀국한 정일형 박사를 평양의 교회에서 만나 결혼했으며
남편이 항일운동을 하다 투옥된 동안에는 삯바느질, 누비이불장수, 행상
등으로 어려운 시절을 보내기도 했다.
46년에는 서울대 법대에 최초의 여학생으로 입학했고 52년에는 고시에
합격한다.
그러나 이승만 대통령이 야당 국회의원의 아내라는 이유로 판.검사 임용을
반대했기 때문에 이 여사는 "한국 최초의 여성변호사"에 그쳐야했다.
이 여사는 여성차별의 벽을 무너뜨리기 위해 56년 8월25일 서울 중구
남대문로에 현 가정법률상담소의 전신인 여성법률상담소를 세워
가족법개정운동을 주도하기 시작한다.
결국 지난 89년 남녀의 상속지분 차별을 없애고 배우자의 재산분할 청구권
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가족법이 개정됐다.
63년 가정법원이 설치되는데 핵심 역할을 했으며 76년에는 여성운동의
산실인 여성백인회관을 서울 여의도에 세워 남녀평등 구현에 몰두했다.
이 여사는 여권운동은 인권신장과 맥락을 같이한다는 신념을 갖고
지난 74년 11월 민주회복국민선언, 76년 3.1민주구국선언(일명 3.1명동사건)
등 민주화운동과 인권운동에 참여했으며 이 과정에서 김대중 대통령, 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와 깊은 교분을 맺게 됐다.
이러한 인권운동과 여성운동 등의 공로를 인정받아 71년 세계평화상을 비롯
막사이사이상(75년) 유네스코 인권교육상(82년) 국제변호사회 국제법률봉사상
(84년)을 수상했으며 국내에서도 국민훈장 무궁화장, 3.1문화상 등 많은 상을
받았다.
이태영 여사는 91년 발간한 자서전 "나의 만남 나의 인생"에서 평생 진정한
남녀평등시대를 열기 위해 노력했다고 회고하고 그러나 "평생 살아가는 동안
수많은 분들의 도움이 있었기에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다"며 주변인사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이 여사는 95년 상담소장직을 맏사위 김흥한 변호사에게 물려주고 자서전을
준비하던중 지병악회로 집필을 중단, 투병생활을 해왔다.
< 김문권 기자 mkkim@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2월 18일자 ).
평생을 몸바치면서 흔들림 없는 여성계의 대모로 추앙받아왔다.
첫돌을 지나자마자 부친을 여읜 이 여사는 어머니 김흥원 여사의 가르침
아래 성장, 평양 정의고녀를 거쳐 36년 이화여전 가사과를 졸업했다.
그해 미국에서 막 귀국한 정일형 박사를 평양의 교회에서 만나 결혼했으며
남편이 항일운동을 하다 투옥된 동안에는 삯바느질, 누비이불장수, 행상
등으로 어려운 시절을 보내기도 했다.
46년에는 서울대 법대에 최초의 여학생으로 입학했고 52년에는 고시에
합격한다.
그러나 이승만 대통령이 야당 국회의원의 아내라는 이유로 판.검사 임용을
반대했기 때문에 이 여사는 "한국 최초의 여성변호사"에 그쳐야했다.
이 여사는 여성차별의 벽을 무너뜨리기 위해 56년 8월25일 서울 중구
남대문로에 현 가정법률상담소의 전신인 여성법률상담소를 세워
가족법개정운동을 주도하기 시작한다.
결국 지난 89년 남녀의 상속지분 차별을 없애고 배우자의 재산분할 청구권
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가족법이 개정됐다.
63년 가정법원이 설치되는데 핵심 역할을 했으며 76년에는 여성운동의
산실인 여성백인회관을 서울 여의도에 세워 남녀평등 구현에 몰두했다.
이 여사는 여권운동은 인권신장과 맥락을 같이한다는 신념을 갖고
지난 74년 11월 민주회복국민선언, 76년 3.1민주구국선언(일명 3.1명동사건)
등 민주화운동과 인권운동에 참여했으며 이 과정에서 김대중 대통령, 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와 깊은 교분을 맺게 됐다.
이러한 인권운동과 여성운동 등의 공로를 인정받아 71년 세계평화상을 비롯
막사이사이상(75년) 유네스코 인권교육상(82년) 국제변호사회 국제법률봉사상
(84년)을 수상했으며 국내에서도 국민훈장 무궁화장, 3.1문화상 등 많은 상을
받았다.
이태영 여사는 91년 발간한 자서전 "나의 만남 나의 인생"에서 평생 진정한
남녀평등시대를 열기 위해 노력했다고 회고하고 그러나 "평생 살아가는 동안
수많은 분들의 도움이 있었기에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다"며 주변인사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이 여사는 95년 상담소장직을 맏사위 김흥한 변호사에게 물려주고 자서전을
준비하던중 지병악회로 집필을 중단, 투병생활을 해왔다.
< 김문권 기자 mkkim@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2월 1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