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가 급등락을 거듭하자 신문사에는 투자자들의 전화가 빗발친다.

주가전망을 묻는 사람 기업정보를 알려달라는 사람 전산장애 문제를 강도
높게 지적해 달라는 사람등 전화를 거는 사람과 내용도 가지각색이다.

이 가운데 빈도가 가장 높은 것은 역시 주식투자로 손실을 보았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하소연하는 경우다.

김 아무개씨는 불과 며칠만에 원금을 모두 날렸다고 한다.

지난 16일 3천만원을 증권사에 맡기고 한창 시세가 올라가던 증권주를
사들였는데 주가가 갑자기 무너지면서 깡통을 차고 말았다는 것이다.

김씨는 증권주가 연일 상한가로 치솟자 물량을 확보하기 위해 원금의
2.5배에 달하는 매수주문을 냈다.

미수제도를 활용해 한도껏 주문을 낸 것이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아침에 상한가로 사들였던 주식이 순식간에 하한가로 돌변해 버린 것이다.

매입가격에 비하면 사자마자 주가가 30%가량이나 빠졌다.

여기에 2.5배를 곱하니 이날 하루에만 75%에 달하는 손실이 생겼다.

매정하게도 주가는 다음날에도 하한가까지 떨어졌고 또 다음날에도 하락세
가 이어졌다.

21일엔 증권사가 반대매매를 통해 계좌를 정리하게 된다.

원금을 모두 날린 것은 물론이고 자칫하면 추가 자금까지 물어넣어야 할
판이다.

주가 급등락으로 큰 피해를 본 것은 비단 김씨만이 아니다.

회사를 명예퇴직하고 받은 돈으로 주식을 샀다 절반이상을 날렸다는
투자자도 있고 주가가 하락세로 바뀌자 겁이 덜컥나 다음날 다시 팔아
버렸다는 샐러리맨도 있다.

주식시장이란 원래 투기적 요인이 존재하고 그것이 바로 매력이기도 하다.

누구나 잘만 매매하면 목돈을 마련할 수 있다는 꿈을 준다.

그러나 주식투자는 실패하는 날이면 결과가 비참해질 수도 있다.

어쩔 수없이 직장을 떠난 사람들이 퇴직금까지 날리는 사태가 줄을 잇는다면
사회적 문제로 비화할 수도 있다.

주가변화에 따른 파장을 줄이기 위해서는 급등 급락은 가능한한 적게할
필요가 있다.

물론 주가란 살아 움직이는 생물과도 같은 것이어서 인위적으로 등락을
조정하기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나 지나치게 급등하거나 급락하는 것을 완충시킬 수있는 방법은 있다.

개인투자자의 참여를 줄이고 기관투자가의 비중을 늘리는 것이 그것이다.

전문가 집단이 증시를 주도하면 자체조절기능이 생긴다.

합리적 분석을 통해 주식을 매매하기 때문에 한때의 분위기에 좌우되는
경우가 줄어든다.

개인투자자들도 전문가집단에 의뢰하는 것이 위험도를 줄이는 방법이 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기관투자가들의 역할은 오히려 점점 약화돼 가고 있다.

지난 17일 현재 은행 증권 보험 투신사 등 기관투자가들이 보유하고 있는
주식은 모두 12조8천1백28억원이다.

상장주식 전체 싯가총액의 10.8%에 불과하다.

지난해말 이 비율이 26%였던 점을 감안하면 IMF체제 1년간 기관투자가들의
모습이 얼마나 왜소해졌는지 한눈에 드러난다.

은행은 BIS(국제결제은행) 자기자본비율을 맞추기 위해 증권사는 영업용
순자본 비율을 높이기 위해 위험자산으로 분류되는 주식을 대거 매도해온
탓이다.

외국과 비교해 보면 이같은 모습은 더욱 뚜렷해진다.

지난해말을 기준으로 기관투자가 비중은 미국이 45.6% 영국은 54.5%
일본은 42.4%다.

우리나라의 4~5배 수준이다.

기관투자가들이 증시의 완충역할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특히 한국은 외국인 비중이 기관투자가 비중을 초과하는 거의 유일한
나라다.

우리나라에서 외국인이 차지하는 싯가총액 비율은 약 20%에 이른다.

기관투자가를 모두 합쳐도 외국인 보유규모의 절반에 불과하니 한심해도
보통 한심한 노릇이 아니다.

미국은 외국인 비중이 6.1%, 일본은 9.8%에 불과하다.

기관투자가들이 이렇다보니 증시는 일년내내 외국인들에 휘둘려 왔다.

개인투자자들은 외국인의 눈치 살피기에 급급했다.

그만큼 주가가 급등락을 반복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마침 무디스가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을 상향조정할 것 같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경제가 조금씩 회복기미를 보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기관투자가들도 시급히
제 기능을 찾아야 한다.

정부 역시 이들의 기능을 강화하는 방안을 적극 강구할 필요가 있다.

증시의 자율성 회복은 기관투자가들의 역할이 증대될 때만 가능하다.

< bklee@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2월 21일자 ).